직장 내 험담 피해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제재 수위가 가벼웠던 험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3104건 중 357건(11.5%)이 험담 피해와 관련된 건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전체 3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괴롭힘 피해 10건 중 1건이 험담 피해를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험담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15일 한 대기업에 근무하던 50대 직원이 숨진 이후 직장 내 험담이 원인이 됐다는 유족 주장이 나와 이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유족 주장에 따르면 숨진 직원은 ‘팀장이 오래전 일을 들추며 뒷담화를 했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반면 해당 팀장은 관련 내용을 부인하며 부산동부고용노동지청에 조사를 의뢰했다.
험담이 온라인 ‘저격’ 형태로 이어지면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단체대화방이나 SNS 저격은 확산 속도가 빠르고, 일방적 주장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동두천시청 공무원인 20대 여성의 죽음을 두고도 유족들은 “직장 동료의 SNS 저격 글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험담은 직장 내 괴롭힘 영역에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덕수 신하나 변호사는 “악의적 험담이나 SNS 저격 글은 집단적 따돌림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험담 탓에 불안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징계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험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아 여전히 징계에 소극적인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아직도 ‘뒤에서 욕하는 게 무슨 큰 잘못이냐’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에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험담 역시 괴롭힘이라는 점을 사업주와 구성원 모두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모욕·명예훼손을 입증해 형사고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태연 법률사무소 김태연 변호사는 “직장 내 폭행 등은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험담으로 인한 불안한 업무 환경 조성 등의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며 “현행 괴롭힘 금지법으로 처분한다면 실제 가해 행위보다 경미한 징계가 내려지거나 아예 묻히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어 ‘학교폭력법’처럼 공간적 특수성을 반영한 가해자 처벌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뤄질 경우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법률사무소 지담 유은수 노무사는 “징계에 미온적인 사업자에 대한 처벌조항을 강화하면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