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사사건을 어떻게 공개할지는 검찰이 결정한다. 민간위원은 안건이 오면 의견을 말씀드릴 뿐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검찰이 제시한 방안을 따라간다.”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활동 중인 민간위원들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검찰이 사실상 사건 공개 여부를 좌지우지한다는 취지였다.
심의위 제도는 2019년 12월 검찰 개혁 일환으로 도입됐다. 법무부는 당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면서 중요한 형사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할 때 심의위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심의위 구성은 ‘민간위원을 반수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사건 공개 과정에 국민을 참여시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취재에 응한 민간위원들은 사실상 검찰 뜻대로 심의위가 운영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결정할 때 검찰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만 논의가 이뤄진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의 한 지방검찰청에서 활동 중인 A위원은 22일 심의위 의결 과정과 관련해 “검찰이 먼저 ‘이 범위에서 이 범위까지 저희가 공개하려 한다’고 얘기하는 식”이라며 “검찰도 (구체적인 방안 없이) 회의를 진행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설명했다. A위원은 “한 번도 (검찰 제안에) 반대해 본 적은 없다”며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검찰 안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청 심의위에 참여한 B위원은 “검찰이 처음부터 사건 관계인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해 온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B위원은 “검찰은 피의자 혐의를 목록화해 그중에 뭘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물어보는 정도”라고 전했다.
법무부 규정에 따르면 심의위에 심의 안건을 올리는 권한은 각급 검찰청 소속 공보관이 갖고 있다. 주임 검사나 사건관계인, 출입기자단 등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지만 이들이 심의 대상 사건을 고를 수는 없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 사건’ 등이다. ‘알릴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검찰, 구체적으로는 각 검찰청 고위직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현재 심의위 구조상 결국 위원보다는 각급 검찰청 기관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 대해선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사건 공개를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심의위를 아예 거치지 않고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검찰이 심의위를 거치지 않고 사건 정보를 담은 보도자료를 낸 사례는 332건(73.5%)이었다. 국민일보가 2019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공개된 전국 66개 검찰청 보도자료 45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보도자료에 심의위 의결 여부를 명시하지 않는 등 규정 위반 사례는 37건이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선택적 공보에 따라 심의위 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법무부·검찰 고위직 판단에 따라 사건 공개가 자의적으로 이뤄지더라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심의위에 어떤 사건을 올릴지를 모두 검찰이 고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검찰이 아예 심의위를 열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사건을 감추더라도 이를 감독·견제할 방법은 없다.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활동 중인 민간위원들은 어떤 사건을 공개할지 이미 검찰에서 정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만약 검찰이 특정 사건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면, 심의위 또는 다른 제삼의 기구가 이를 견제하거나 파악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심의위 규정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검찰 의견 따라 오락가락"
B위원은 "검찰이 언론에서 공개를 요구할 줄 알고 미리 심의위에서 정보 공개 의결을 받아 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데 막상 언론이 정보를 요구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C위원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들은 아예 심의위 논의 대상이 아니다"며 "논의 대상 사건들은 대부분 경찰 단계에서부터 보도가 많이 됐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D위원은 "개별 사건에 대해 심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위원들의 권한이 아니라 검찰 권한"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사실상 심의위 안건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으며 의결 여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특히 심의위 민간위원들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최근 서면·전화·이메일 등 비대면 방식으로 심의위가 진행됐다고 했다. 심도 있는 대면 토론을 통해 사건 정보 공개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E위원은 "코로나19 확산 문제 때문에 검찰 입장을 비대면으로 듣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며 "전화로 (검찰 측) 설명을 듣는 데만 30분이 걸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심의위에 급하게 안건이 올라올 텐데 그렇게 되면 위원 대부분 공개하라는 입장이 될 것"이라며 "결국 검찰 편의를 위해 홍보하고 싶은 것만 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 공개 기준이 임의적이고 심의위도 그렇게 운영된다면 심의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법무부 규정상 마음만 먹으면 아예 심의위를 열지 않을 수 있다. 구체적인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려면 심의위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일부러 거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심의위원장과 민간위원 선임권은 각 검찰청의 장이 행사한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각급 검찰청 기관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인사권자 눈치를 보느냐 안 보느냐에 따라 사건 공개 결정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규정위반' 보도자료는 37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시행된 2019년 12월 1일부터 지난달까지 공개된 검찰 보도자료 452건 중 심의위 의결을 거친 것은 120건(26.5%)에 불과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체 55건의 보도자료 중 21건에만 심의위 의결을 거쳤다고 명시했다. 수원지검은 전체 24건 중 4건, 대구지검은 23건 중 4건, 창원지검은 14건 중 2건, 의정부지검은 11건 중 2건만 심의위 의결을 각각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검찰청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는 37건(8.2%)이었다. 21건은 예외적으로 실명을 밝힐 경우엔 심의위를 거쳤다는 점을 보도자료에 적시해야 하는 규정(15조)을 어긴 것이었다. 10건은 공개 요건과 범위를 보도자료에 미기재하거나 잘못 적은 경우였다. 5건은 증거 내용이나 구체적인 범행 수법 등 공개금지 정보를 공개하면서 심의위 의결 여부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머지 1건은 범죄 전력을 공개하면서 심의위를 열지 않은 사례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전체 보도자료 55건 중 13건(23.6%)이 15조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철호 울산시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을 기소할 때는 실명을 공개하면서도 심의위 의결 여부를 보도자료에 적시하지 않았다. 조주빈 등 'n번방' 사건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에 공개 요건과 범위의 표기가 다소 통일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실명 보도를 위한 심의위 의결 절차는 모두 준수했다"고 해명했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지난해 4월 유튜브 생방송 중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상담원에게 욕설한 대학생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검찰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 대학생은) 모욕죄 범죄전력이 있다"고 썼다. 범죄전력 정보는 심의위 의결을 거쳐야만 공개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마산지청은 심의위를 열지 않았다. 마산지청 관계자는 "상담원 상대로 욕설을 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나온 설명"이라고 말했다.
규정을 위반한 일부 검찰청 관계자는 국민일보 질의에 "보도자료 작성하는 분들의 스타일마다 달라질 수 있다"거나 "공개 근거나 범위를 적는 건 의례적 행위"라고 답변했다. 검찰 개혁 일환으로 추진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일선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규정 위반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심의위 의결을 거쳐 실명을 공개할 때는 이를 보도자료에 적시하는 게 규정 취지에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건 공개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세부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해 놓고 이 기준에 해당하면 국민 알권리를 위해 원칙적으로 사건을 공개하면서 심의위 검토를 거치는 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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