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확 줄어든 해외 소비… 소득보다는 물가 끌어올렸다

입력 2021-09-23 04:01

제주도 특급 호텔 중 하나인 신라호텔은 다음 달 개천절과 한글날의 대체 연휴기간 예약이 이미 꽉 들어찼다. 인기 휴양지가 아니더라도 다음 달 초 ‘잘 나가는’ 숙소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A씨는 개천절 대체 연휴기간인 다음 달 2~4일 충남 부여군의 한 숙소를 1박에 5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A씨는 “해외여행을 못 가다 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중단된 뒤 국내 소비가 상대적인 수혜를 입고 있지만 이에 따른 훈풍이 소득을 높이기 보다는 물가만 끌어올리면서 서민의 주름살을 드리우고 있다. 국민의 지갑 사정이 좋아지지 않고 소비의 온기가 물가만 자극할 경우 경제 양극화와 자산가격 상승을 초래해 경제 발전에 족쇄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2일 한국은행 국민계정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019년 4분기까지만 해도 한국인의 해외소비지출액은 매 분기 8000억~9000억원(계절조정 기준)에 달했다. 전체 소비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코로나19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지난 2분기까지 해외소비지출액은 분기별로 2539억~2762억원까지 쪼그라들고 비중도 1%대로 축소됐다.

코로나 초기 동반 침체된 국내소비는 해외소비 감소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올 2분기부터 기지개를 켰다. 2분기 전체 소비지출액이 21조2683억원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21조원을 넘어섰다. 기재부가 지난 6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소비 진작책을 대거 포함한 것도 불씨를 더욱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3분기에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 국내 승인액은 전년 대비 7.2% 증가하며 7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정작 국내 소비 활성화가 서민의 소득을 두텁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결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8% 늘어난 반면,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1분위(소득 하위 20%)와 2분위(소득 하위 20~40%)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1%, -4.4%를 기록했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이 소비와 소득 간 선순환을 상정한 것이란 점에서 해외소비 감소에 따른 국내소비 증가가 내수 활성화 및 서민 소득 증가에 일조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국내소비는 오롯이 물가에 반영되고 있는 모양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2%대의 상승폭을 나타냈는데 이렇게 오래 2%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진 것은 2017년 1~5월 이후 4년 만이다. 특히 7월 물가상승률(2.6%)은 2012년 4월 이후 9년래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전날 발표한 중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0.4% 포인트 올린 2.2%로 수정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했다. 소득이 게걸음을 하는 와중에 물가 상승은 서민의 소비 여력을 줄이고 자영업자에게는 원가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세종=신준섭 신재희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