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이 본격화된 2019년 이후 공인 범죄 실태는 ‘깜깜이’ 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판검사,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가 2018년 대비 지난해 60.3%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전현직 공무원 수사 결과 보도는 2018년 대비 지난해 58.3% 감소했다. 검찰개혁과 적폐청산 수사 이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46.4% 감소한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시행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되레 언론의 적극적인 감시 대상인 공인 관련 범죄 보도를 차단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셈이다.
국민일보는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를 이용해 2018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서울중앙지검이 처리한 사건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 1만3554건을 전수 조사했다. 전현직 공무원 등 공인 관련 사건 보도에 대해선 2016년과 2017년 현황도 추가로 살펴봤다.
조사 결과 2018년 전현직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 결과 보도는 58건,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전현직 공무원 수사 결과 보도는 72건으로 나타났다. 이들 공인 범죄에 연루된 일반인 사건까지 포함하면 모두 92건이 보도됐다. 국회의원과 판검사, 3급 이상 공무원 등은 고위 공직자로 분류했으며 중복 보도는 1건으로 처리했다.
공인 범죄 보도는 검찰개혁이 가속화된 2019년 들어 급격히 감소했다. 박상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 법무부가 이를 제정한 시기다. 그해 전현직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 결과 보도는 24건, 전체 전현직 공무원 수사 결과 보도는 36건, 공인 사건 관련 전체 수사 결과 보도는 53건으로 집계됐다. 2018년 대비 각각 58.6%, 50.0%, 42.4% 감소한 것이다.
공인 범죄 보도는 2020년에 더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공개를 금지하는 등 ‘검찰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해 전현직 고위 공직자 수사 결과는 23건, 전현직 공무원 수사 결과는 30건, 공인 사건 관련 전체 수사 결과는 43건 보도됐다. 2019년과 비교해 각각 4.2%, 16.7%, 18.9% 줄어든 것이다.
검찰개혁 본격화 이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2020년의 보도 급감 실태는 더 가파르게 나타난다. 2년 만에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 결과 보도는 60.3%, 공무원 수사 보도는 58.3%, 공인 사건 전체 수사 보도는 53.3% 감소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의 알권리 침해가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일반 시민들에 대한 사건은 원칙적으로 비공개해야 하지만, 공인의 경우엔 공개가 원칙”이라며 “그런데 현재는 이 원칙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고위 공무원 등 공인 수사 결과 보도는 최근 3년간 급감한 반면 공인 범죄를 제외한 다른 유형의 범죄 보도는 감소하지 않았다. 법무부와 검찰의 보도 제한 탓에 고위 공무원 등 권력층을 감시·견제하는 언론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높은 분들’이 덕 봤다
서울중앙지검이 2018~2020년 처리한 범죄 유형별 보도 건수를 살펴보면 2019년에 진행된 검찰개혁 이후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등 공인 범죄 보도 건수만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공무원을 비롯한 권력층만 형사사건 공개금지의 덕을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횡령 등 기업 범죄, 폭행·사기 등 민생 범죄, 강간 등 성범죄 사건에 대한 보도는 최근 소폭 증가하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018년 기업 범죄에 대한 수사 결과 보도는 26건이었다가 2019년 35건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27건으로 집계됐다. 민생·성범죄 수사 결과 보도는 2018년 30건, 2019년 42건, 2020년 41건이었다. 전체 수사 결과 보도는 2018년 136건, 2019년 122건, 2020년 101건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공인 범죄 보도가 급감했지만 다른 유형의 범죄 보도 건수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됐기 때문이다.
다만 공인 범죄 보도가 2018년 높게 나타난 것은 당시 휘몰아친 적폐청산 수사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2019~2020년 공인 범죄 보도 건수는 다른 시기와 비교해도 상당히 적은 수치다. 이 시기 보도 건수는 적폐청산 이전인 2016~2017년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대검찰청의 검찰연감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이 2019년 처리한 현직 공무원 사건은 2018년에 비해 189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2017년에 비해서는 각각 463건, 186건 증가했다. 또 서울중앙지검에서 2019년 불기소 처리한 현직 공무원 사건은 전년 대비 300건(19.5%)이나 늘어났지만, 검찰은 불기소 사건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검찰과 법무부가 선택적으로 사건 공개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 2019년 12월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공식 발표한 보도자료 55건 중 공인 관련 범죄는 17건에 불과했다. 기업·민생·성범죄는 그 배가 넘는 38건이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인에 대해선 국민의 알권리가 훨씬 더 강조돼야 하는데 오히려 공인을 보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화된 ‘깜깜이 수사’
고위층 범죄 정보가 묻힐 수 있다는 문제는 법무부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형사사건 공개금지를 추진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2019년 12월부터 시행 중인 이 규정은 형사 사건 관련 내용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칠 경우 일부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공개 기준은 모호하다. 공개 대상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사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알릴 필요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사실상 검찰과 법무부라는 점이다.
더욱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재임 중이던 2020년 2월 법무부는 검찰·법무부가 기소 후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공소장 제출 금지 조치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처음 적용됐다. 법무부는 여전히 각 사건의 첫 공판이 지난 뒤 공소장 전문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국민 관심이 높은 이른바 ‘대형 사건’의 경우 기소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첫 공판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사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상당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야권에선 “법무부가 특정 사건에 대한 추가 보도나 관심도를 떨어뜨리려고 공소장 비공개 원칙을 세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기부금 횡령 혐의 사건은 기소 뒤 첫 공판까지 약 11개월 걸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검찰 기소 후 1년4개월 뒤에야 첫 공판이 열렸다.
이런 이유로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주요 사건이 공개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국가정보원 3급 간부인 A씨가 성추행 혐의로 지난 5월 재판에 넘겨진 사실은 기소 후 3개월 지난 다음 알려졌다. 2015년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 마약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것을 놓고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은 검찰의 봐주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형사사건 공개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정하고 이 기준에 해당되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원칙적으로 사건 정보를 공개하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때그때 검찰·법무부가 자기들 편한 대로 ‘이 사건은 공개해도 되겠다. 심의위 소집하자’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선 감시·견제 장치가 사실상 사라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현재 시스템은 검찰 편의를 위해 홍보하고 싶은 내용을 홍보하는 식”이라며 “원칙적으로 주요 형사 사건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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