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2장 4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소리 높여 울고 있습니다. 3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한 말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을(가나안 족속)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그렇게 하셨을까요.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시작합니다. 성경은 왜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2장 7절과 10절은 그 사이에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말합니다. 여호수아와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는데, 그 세대가 죽고 난 뒤 태어난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그의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성경은 다음세대를 ‘다른 세대’라고 말씀합니다. 시간상 다음세대가 아니라 이방 민족처럼 ‘다른 세대’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일을 염려해 요단강을 건넌 후 탑을 세웠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다음세대에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런 뒤 할례를 행하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당한 모든 수치가 굴러갔다는 의미로 길갈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갈은 과거의 은혜를 회상하는 동시에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고, 그 땅에서 살아갈 때 주신 하나님 약속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도, 언약의 말씀도 없는 다른 세대가 된 것입니다.
본문 1절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는데 이면에는 그 백성들이 길갈로 오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잊으면 그곳을 찾아 은혜를 회상하고 처음 감격과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것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곳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올라온 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은혜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과거 은혜의 역사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속의 성취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앞으로도 함께하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2장 16절과 18절에서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우시고 그들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알고 신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길갈’ 세대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미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경험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해 줘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셨습니다. 다른 세대를 보고 통곡하지 않으려면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강병철 목사(서울 초대교회)
◇초대교회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따라 ‘하늘 뜻을 이루는 교회’를 비전으로 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강병철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목회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003년부터 초대교회 위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