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경선후보직을 사퇴했다. 경선 초반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빅3’로 분류됐지만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 1차 슈퍼위크 결과에 경선을 완주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따로 밝히지 않은 정 전 총리는 정권재창출을 위한 ‘백의종군’ 역할을 자처했다. 전북 출신인 정 전 총리의 사퇴는 추석 직후 예정된 민주당 호남권 지역순회경선에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 전 총리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성원해 주신 많은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경선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지난 12일 발표된 1차 일반당원·국민 선거인단 투표결과가 갑작스러운 사퇴 결단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캠프에서는 64만명의 1차 선거인단 중 약 20만표 확보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불과 2만14표(4.03%)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3위를 차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격차도 7% 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지면서 경선완주 동력이 소진됐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캠프는 이날 오전부터 급박하게 돌아갔다. 정 전 총리는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숙고에 들어갔다. 오후 3시 캠프 소속 의원들을 소집해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회의에서는 사퇴 반대 의견도 적잖게 나왔지만 정 전 총리의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정 전 총리는 캠프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묵묵히 들은 뒤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특정후보 지지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만 답했다. 정권재창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민주당 의원은 “경선을 사퇴했다고 해서 민주당 내에서 정 전 총리가 갖는 정치적 중량감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며 “경선 과정이나 당내에서 갈등상황이 발생하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정 전 총리의 사퇴가 향후 경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전북이 고향인 정 전 총리는 호남지역에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선 없는 본선 직행을 노리는 이 지사와 반전의 계기를 찾고 있는 이 전 대표 모두 25~26일 예정된 호남권 경선을 분수령으로 삼고 있는 만큼 정 전 총리 지지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지사는 광주·전남 공약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정 전 총리는 2008~2010년 당대표를 하실 때 제가 상근 부대변인 직책으로 모시던 분”이라며 “당의 중심을 잡아주시고 정권재창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명캠프는 정 전 총리의 주요 공약 중 수용할 만한 정책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이 전 대표 역시 “결단에 이르기까지 고뇌가 오죽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며 “품격과 절제, 푸근한 인품과 공익으로서의 책임감, 개혁을 향한 책임있는 비전을 보여준 정세균 정신의 실천은 저희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의 양극화 해결공약 중 하나인 ‘분수경제’를 언급하며 정책 측면에서의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현수 오주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