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혐의로 처벌 가능” 똑똑한 AI 챗봇, 범죄상담 척척

입력 2021-09-13 04:05 수정 2021-09-13 14:58

직장상사로부터 성적으로 불쾌한 발언을 들은 한 피해자가 메신저 대화창에 “저기…”라고 말을 건다. 그러자 챗봇이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묻는다. 피해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메신저 대화창에 적어 내려갔고 챗봇에 “상대방을 처벌할 수 있니”라고 질문한다. 챗봇은 적용될 수 있는 혐의와 과거 어떤 판례가 있었는지 피해자에게 상세히 알려준다. 법적 도움을 받는 방법도 함께 안내한다.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이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개발한 인공지능(AI) 챗봇을 사용할 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본 것이다. 이 챗봇은 경찰 조사를 받기 전 단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연구팀은 12일 “피해자들이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거나 법 해석 오류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챗봇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경찰과 기술 운영 방안을 협의 중이다.

해당 챗봇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의 역할도 컸다. 당사자가 범죄 피해를 알리고 법률적인 도움을 받으며 겪는 어려움을 챗봇 시스템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피해자 A씨는 “실제로 사람을 만나 눈을 마주친 상태로 (성폭력 피해) 얘기를 하는 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이런 점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피해자들이 있는데, 챗봇을 통하면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담과 수사 등 내밀한 영역까지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융합한 가상세계) 기술이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상담·신고 과정에서 신상이 공개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큰 성범죄나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비대면 기술들이 적극 도입되는 중이다.

일례로 경남경찰청은 지난달 24일 네이버가 운영하는 모바일 기반의 메타버스 ‘제페토’에 2층 규모의 경찰서 건물을 가상현실로 구현했다. 가상의 경찰서 건물 주변에는 언어별로 ‘경남 외국인 치안소식’ ‘외국인을 위한 범죄예방 가이드’ 등이 입간판처럼 세워져 있다.

경남경찰청은 향후 범죄피해 이주여성 상담창구를 만들어 치안서비스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서비스 이용 시 이주여성이 제페토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메타버스 속 경남경찰서를 방문하면 상담이나 신고가 시작된다. 경찰서 안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 아바타에 다가가 말을 걸어 상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중국어·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우즈베크어가 지원된다. 가정폭력을 당했다면 관련된 상담을 요청하고 대처 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하더라도 국내 법적 절차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신고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낯선 언어에 따른 의사소통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편견이나 감정적인 치우침이 없는 기계와 대화를 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이들 기술이 확대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법률 조언을 일차적으로 제공하고 추후 실제 대면조사나 상담, 사건 해결까지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 긍정적인 공공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신용일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