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국민지원금’ 기준이 지급 개시 이후에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소득 하위 80%에게 지급하려다가 당정협의를 거쳐 88%가 되더니 막상 지급을 시작하자 여당을 중심으로 90%로 다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민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 소득 경계선에 선 이들의 불만 제기를 수용한다는 명분이 있기는 하다. 5일간 접수된 이의신청만도 7만건을 넘는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해 확정한 정책마저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행태는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대선 표심 달래기에만 신경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2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지원금 지급을 시작한 지난 6일부터 5일간 7만2278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됐다. 가족 구성이 변경됐다거나 소득 평가의 잣대인 건강보험료를 재산정해 달라는 사유가 가장 많았다. 비중으로 보면 각각 39.4%, 37.0%를 차지한다. 이의신청 기간이 11월 12일까지여서 10만건은 가뿐히 넘을 전망이다.
소득 하위 88%를 판단하는 건강보험료 기준을 간발의 차로 충족하지 못한 이들의 불만이 주로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준 확정 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이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소득 기준 경계에 걸친 이들이 제기하는 불만은 노인 기초연금 등 모든 사업이 갖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 7월 국민지원금 10문10답 자료를 통해 “설사 이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사업 취지에 맞는 대상선정 및 선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적정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여당이 나서서 정부 원칙을 뒤흔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9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88%보다는 (지급 범위를) 조금 더 상향,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 90% 정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지금이라도 보편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힘을 실었다.
이렇게 기준점을 바꿀 경우 소득 산정부터 시작해 모든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예산 범위를 초과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추가 예산 마련을 위한 행정 절차도 문제지만 당정협의를 거친 정부 공식 발표조차 정치권 입맛에 맞춰 바꿀 경우 정책 신뢰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선 구제할 수 있지만 예산 소진 시 더 줄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