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尹 피의자 입건… 신속 규명하려다 ‘과도한 수사’ 될 수도

입력 2021-09-11 04:03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야당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고발 사주’ 의혹을 신속히 규명하겠다는 의미다. 윤 전 총장이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게 여권·언론계 인사에 대한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윤 전 총장과 손 검사의 뚜렷한 연결고리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을 곧바로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공수처는 언론에 의혹을 처음 제기한 제보자를 대면조사 하거나 대검찰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은 적도 없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고발인 조사, 제보자에 대한 기초조사 등이 이뤄졌고 윤 전 총장을 입건한 건 사실 규명을 위해서일 뿐 반드시 기소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10일 손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경위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에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다음의 일이다. 수사기관이 나서서 사실관계를 밝히라는 것이 언론의 요구 아니냐”고 되물었다.

‘수사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실이라면 너무나 중대범죄”라며 “사건 특성상 증거확보가 심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증거인멸이나 훼손의 우려가 컸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신속한 물증확보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는 이날 압수수색에서 김 의원과 손 검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과거 언론 인터뷰 등에서 휴대전화를 6개월마다 바꾼다고 발언했고, 손 검사의 휴대전화도 지난해 쓰던 것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공수처의 압수수색 대상에 윤 전 총장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윤 전 총장은 김 의원과 손 정책관 압수수색 영장에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입건 경위에 대해 “언론에서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 오른팔이라고 하지 않았나. 윤 전 총장도 ‘나를 수사하라’고 하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법조계에선 윤 전 총장 입건 속도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재까지는 윤 전 총장이 손 검사에게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한 정황이 나온 바가 없고, 손 검사 등의 진술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수처는 그간 고발된 사건을 선별적으로 입건해왔다”며 “피고발인을 곧바로 피의자로 입건하는 것은 시기가 빠른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은 의혹의 최정점에 있는 인물인데, 중간전달자에 대한 조사도 없는 상황에서 윗선을 입건한 셈”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자칫 선거개입으로 보일 수 있는, 야권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근거도 없이 ‘일단 해보자’는 식의 태도는 수사권 남용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