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이낙연 전 대표가 의원직 사퇴 선언을 한 지 하루 만에 국회 의원실을 비우는 등 사퇴 수순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사퇴를 만류하고 나서면서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당내에서도 사퇴 문제를 놓고 “결기를 보였다”는 평가와 “무책임한 정치적 수법”이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사람을 보내 집기류를 정리했다. 의원실 소속 보좌진 전원에게는 면직을 준비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 캠프 정운현 공보단장은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는 쇼가 아니다. 다 던졌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사퇴를 만류하면서 사직안 처리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의원직 사퇴는 본인 의사도 중요하지만 소속 정당 대표와 협의를 하는 것이 관례”라며 “송영길 대표가 이 전 대표와 통화해 사퇴를 만류했다”고 밝혔다. 사퇴안 본회의 부의권을 갖고 있는 박병석 국회의장은 오스트리아 순방 중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대표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며 “돌아가면 본인과 민주당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다.
당 지도부는 의원직 사퇴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사직안이 처리될 경우 민주당 의석수는 현재 170석에서 169석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대선 후보 선출 이후 민주당 원팀 기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당 지도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사퇴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날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에서 “송 대표에게 미리 상의드리지 못하고 의원직 사퇴를 발표하게 된 것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며 “당 지도부에도 제 의사를 존중해주길 바라며 (사직서를)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 전 대표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인 설훈 의원도 이날 오전 의원직 동반 사퇴를 선언하려다 당 지도부의 만류로 번복했다. 동교동계인 설 의원은 애초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국회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선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견 30여분 전 돌연 언론에 기자회견 취소 안내 문자를 보내면서 해프닝으로 그쳤다. 캠프 관계자는 “당 지도부와 함께 이 전 대표까지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연이은 의원직 사퇴 소식을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 일각에서는 “정형화된 정치전략의 일종” “개인의 유불리만 따진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혹평도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에서 “의원직 사퇴는 (여론의 반전을) 계산한 것이 아니다”고 진정성을 호소했다.
이 전 대표는 경선 분수령인 호남 경선을 앞두고 이 지사의 본선경쟁력과 도덕성 비판에 주력했다. 그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지사를 겨냥해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계시는 분들이 좀 불안하다. 그분들의 정책이라든가 살아온 궤적이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