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시기·형식, 실익도 없어…” 고발 사주 사실이면 그만큼 치명적

입력 2021-09-10 04:02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도 춘천에서 시민들을 향해 팔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사실이라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후보직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거짓이라면 얻어맞으며 큰 윤 전 총장으로서는 더욱 큰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이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야권에 범여권 인사들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의 진위 여부가 낳을 효과를 9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의혹이 과연 실제 있음직한 일인지 평가해본 법조계의 반응은 “상상하기 어렵다”로 요약됐다. 이는 뒤집어 보면 이번 의혹이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진상 규명 결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개연성이 낮았던 만큼 뒤따를 충격과 책임이 클 전망이다.

‘믿기 어렵다’는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반응은 지난해 4월이라는 시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더욱 행동을 조심하는 법이며, 고발장에 거론된 사건들의 수사는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반응이었다. 공개된 텔레그램 대화 화면상 고발장과 판결문이 전달된 시점은 지난해 4월 3일이다. 이날은 4·15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튿날이었다. 일선은 주요 사건 수사를 중단하고 선거 대응 근무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고발이 윤 전 총장에게 득이 될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었다. 야당의 고발에 따라 윤 전 총장 배우자 김건희씨의 명예훼손이 주장된다면 앞서 인사청문회나 언론 보도로 거론된 사건들이 재차 상기된다는 것이다. 고발 이후 총장이 수사를 지휘하면 정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했다는 시각도 제시됐다. 윤 전 총장이 만일 고발을 마음먹었다면 직접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검사들도 많았다.

고발장의 내용과 형식도 주목받았다. 검사가 작성한 솜씨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군데군데 검사 어투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총장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이행된 일이라면 공개된 것보다 수준 높은 문서가 넘어갔어야 하지 않느냐는 관측도 있었다. 문장부호가 빠진 대목, 평어와 경어가 섞인 대목 등이 지적됐다. 여러 사건을 하나로 묶어 고발한 형식 자체가 깔끔하지 않다는 평도 나왔다.

많은 이들은 목적 달성 여부를 말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위법성을 무릅쓰고 이뤄진 일이었다면, 결과적으로 지시가 이행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3일 고발장은 당일 오전에 벌어진 상황까지 담겨 급히 전달된 정황이 있는데, 실제 고발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꼭 성사해야 했다면 험지에 출마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아닌 다른 이를 통했을 것이란 시각도 여전하다.

이번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응들은 거꾸로 의혹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대검찰청 감찰부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사에 따라 의혹이 사실로 나타나면 비난과 파장은 엄청날 전망이다. 이 경우 선거를 앞두고 급히 벌였다는 사실, 의도적으로 문건을 조악하게 작성한 사실도 드러나게 된다. 고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사실로 판명될 경우 무엇보다도 검찰 조직을 사유화했다는 개념이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믿기 어렵다’고만 반응하는 건 아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별도의 최초 작성자나 또 다른 경로의 전달자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들도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신속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