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지원 폭증했지만… 탈영 급감에 더는 쫓을 군인 없어 폐지

입력 2021-09-10 04:05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군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속 2인 1조 DP로 등장했던 배우 정해인(왼쪽)과 구교환(오른쪽), 군무이탈담당관인 중사로 분했던 김성균(가운데). 이들의 흥미로운 탈영병 추적기는 DP 자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넷플릭스 제공

최근 군 헌병대 현장에서 ‘군무이탈체포조(DP)’에 지원하려는 신병들이 폭증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흥행 여파로 청년들 사이에서 DP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DP는 육군 전체에서 100자리 안팎에 불과해 ‘희귀 보직’으로 통했다. 하지만 지난달 군 수사 관련 보조 업무를 부사관이나 군무원이 맡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내년 상반기를 끝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DP는 과연 누가, 어떻게 해왔던 것일까. 육군 헌병대 출신 국민일보 기자가 DP 예비역들의 인터뷰와 제보를 녹여 자세히 소개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 처리했다.

DP는 ‘Deserter Pursuit’(탈영병 추적)의 약자로 군사경찰(헌병) 군무이탈체포조를 칭한다. 현재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DP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헌병 이외의 병사들 사이에선 DP보다 ‘사복 군인’ ‘장발 군인’ ‘군인 형사’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불렸다.

별칭에서 알 수 있듯 DP는 사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허용됐다. DP가 많은 병사로부터 선망의 보직이 된 결정적 이유기도 하다. DP로 선발된 병사는 휴가나 외박을 통해 입대 직전 입던 개인 사복과 운동화를 가지고 복귀한다. 이는 DP가 수행하는 임무의 특수성 때문이다. 탈영병 체포에 나선 DP는 신분을 숨기고 현장에 잠입할 때가 많다. 단번에 군인임이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다.

보통 사단급 규모 부대의 헌병대에서는 1개의 DP조(2인 1조)로 운영했다. 사단 내 헌병 중 단 2명만 DP로 선택된 셈이다. 부대 여건에 따라 DP를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군에 따르면 현재 육군 전체에 100여명 안팎의 DP가 활동 중이다. 해병대와 공군, 해군은 이전부터 병사로 구성된 DP를 따로 두지 않고 탈영 사건이 발생하면 간부 수사관이 직접 나섰다. 이제 육군도 같은 방식을 따르게 됐다. DP병 폐지로 일정 병력은 전투보직으로 전환배치될 예정이다.

대부분 DP는 자신의 군 생활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2014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1년 2개월간 DP로 근무한 예비역 김성민씨는 “살아가면서 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DP가 되려면 두 가지 필수 조건이 따랐다. 보직이 헌병이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수사과 소속 계원이어야 했다. 헌병 보직은 근무헌병, 수사헌병, MC 승무헌병, 헌병 특수임무대(SDT) 4개로 나뉜다. 이 중 DP가 될 수 있는 보직은 근무헌병과 수사헌병뿐이다. 근무헌병 중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편제 문제로 수사헌병으로만 운영하는 곳도 있다. MC 승무헌병은 주요 인사 호위, SDT는 군 범인 검거와 주요 인사, 시설 경호경비라는 본래 역할이 있어 DP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일반 보직인 근무헌병은 전체 헌병 60% 이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헌병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시력이 좋아야 한다, 키가 커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절대적인 선발기준은 아니다.

병역판정검사에서 2급 이상 받은 인원 중 무작위 차출이다. 단 신체에 3㎝ 이상 문신이 없어야 하고, 기소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거나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어서도 안 된다.

DP가 되는 정형화된 자격시험이나 특별한 선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기자를 비롯해 국민일보 취재에 응한 DP 예비역들 역시 가지각색의 이유로 발탁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생각지 못한 기회에 우연히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종합해보면 누구는 잘생긴 외모 덕에 됐고 누구는 학벌이 좋아서 발탁됐다. 체격이 좋아서,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체력적 이점으로 뽑힌 이들도 있었다. 드라마 ‘D.P.’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관내 주요 간부나 DP 전임자 등 선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의 눈에 띄어 기회를 얻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선발 공지를 한 후 면접시험을 진행하는 부대도 드물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P가 되려면 병역 시기상 운도 따라야 했다. DP는 사수의 주도 아래 부사수가 보조 업무를 하며 임무를 익히는, 사수-부사수 구조로 운영된다. 사수의 전역 일자가 다가오면 부사수가 사수에 올라 새로운 부사수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전임자(사수)가 전역할 시기가 돼야 업무를 인계받는 게 가능해진다.

DP 예비역 사이에선 “돈 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었다”라는 증언도 들린다. 금전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했다는 것인데, 이는 제한된 활동비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체포 과정에서 식대·교통비·숙박비 등으로 활동비를 쓰다 부족해지면, 개인이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실제로 02군번 DP 출신 정창민씨는 “1인당 36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때는 탈영이 워낙 많아 36만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가뜩이나 높았던 DP 선발 경쟁률은 막차를 타려는 수요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군 헌병대 관계자는 “최근 전입 신병들로부터 DP 지원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면서 “드라마 영향인 듯한데, 드라마는 2014년 이전이 배경이지 않나. 일 년 동안 단 한 건의 탈영 사건도 없는 사단이 여럿일 정도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크게 줄어든 탈영 건수는 DP병 폐지의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병사의 휴대전화 사용, 고충 토로 창구의 증가 등으로 탈영병 건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군에 따르면 2016년 219건으로 파악됐던 군무이탈 입건 수는 지난해 91건으로 감소했다.

송태화 박구인 기자 alvin@kmib.co.kr

[군 헌병대 출신 기자가 전하는 숨 막혔던 '진짜' D.P.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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