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D.P.’ 속 탈영병은 조직 내 부조리와 방조하는 상관들, 가정문제까지 복합적 상황이 맞물려 탈영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많은 탈영병이 폭력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탈영을 택한다. 대체로 탈영은 우발적이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궁지에 몰린 그들은 “최악 속에서 택한 최선”이라고 항변한다. 육군 헌병대 출신 기자의 경험과 군무이탈체포조(DP) 예비역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생생한 사례를 전한다. 등장 인물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처리했다.
“2003년 탈영했는데 자수하려고 합니다.”
2016년 2월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는 위병 근무병들을 찾아왔다. 꽤 다부진 몸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수사과에 인계되고 3시간쯤 후 경기도 안산에 산다던 그의 어머니와 형이 달려왔다. 탈영병 강혁승씨의 어머니는 조사실에 들어서자마자 목메는 소리로 아들을 찾았다. “혁승아, 혁승아….”
2002년 입대 이후 14년 만의 재회였다. 집으로 연락하면 체포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탈영 후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강씨의 집 주소도, ‘017’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도 그대로였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집에 오고 싶은데 (이사하면) 못 찾아올까봐”라며 다시 한번 흐느꼈다.
서른 중반이 됐지만 여전히 일병 계급에 머물러 있던 그의 신원조회 결과 한 번의 탈영 전력이 더 나왔다. 첫 번째 탈영은 부대 밖으로 나서자마자 곧장 발각돼 미수에 그쳤다. 강씨는 “간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나서 만창(영창 15일)을 다녀왔다”며 “몇 달 후 휴가를 나왔다 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탈영 직후 그는 부산으로 내려가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도피 생활의 첫발을 뗐다. 이후 이곳저곳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원양어선을 3년씩 두 번, 총 6년 탔다고 했다. 배에서 내린 뒤에는 유흥업소 아가씨(접대 여성) 관리 일을 맡았다고 했다.
그를 두 차례나 탈영으로 내몰았던 건 다름 아닌 엽기적인 가혹행위였다. 강씨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전입 초기부터 선임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했다. 관내 간부들의 차량 번호를 다 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폭행은 갈수록 심해졌다. 변소를 혓바닥으로 핥게 했고, 잠자는 그의 얼굴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는 “세탁실로 끌려가 폭행당하는 건 일상이었다”고도 했다.
물리적·언어적 성희롱도 다반사였다. 강제로 음모를 면도하게 시켰고, 청소를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임들 앞에서 자위행위를 강요받기도 했다. 조직적이고 집요한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휴가를 나왔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강씨는 “새우배(원양어선) 생활도 무척 고됐지만, 군대보다는 훨씬 행복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13년 만에 자수한 이유는 황반변성을 앓던 오른쪽 눈 때문이었다. 그는 “실명 위기 상태가 될 때까지 병원 문턱 한번 가보지 못했다”며 “너무 힘들어서 지금이라도 자수하고 원래 삶을 찾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강씨는 “다시 없을 불효를 저질렀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면서 어머니께 속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가혹행위를 못 견뎌 도망친 이들을 체포하는 일은 DP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09군번 DP 김재훈씨에게 탈영병 송민수씨는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살려 달라”는 그의 외침은 1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악몽으로 재현되는 트라우마다. 김씨는 “만약 그분(탈영병)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송씨 체포에 나선 건 김씨가 DP 사수로 올라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송씨는 휴가를 나간 이후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였다. 베테랑 DP 김씨는 송씨의 흔적을 금세 찾아냈다. 송씨의 주소지 인근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찾은 기록이 입수된 것이다. ATM 근처 피시방을 수색하던 중 송씨를 찾았다.
김씨는 “헌병대라는 말에 눈물 흘리고 손을 비벼가며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더라. 그 말에서 분명히 심한 가혹행위를 당했겠거니 생각했다”며 “부대로 돌아가는 내내 쭈그려 앉아 사시나무 떨듯 계속 바들바들 떨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의 예상대로 송씨는 선임들의 심한 구타에 못 이겨 탈영했다. 신병 시절 생활관 고참에게 밉보인 후 폭행, 폭언과 협박을 당했다고 했다. 김씨는 “스무명 정도 탈영병을 잡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사례”라며 “군인으로서, DP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당시엔 그를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그가 무사히 군 생활을 끝마쳤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직적인 폭력이나 가혹행위 외에도 탈영병의 사연과 그들이 부대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2014년 여군 하사 김미정씨는 장기복무심사에서 탈락한 것에 불복, 휴가 복귀를 거부하고 1위 시위에 나섰다. 그는 성과가 심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국가가 나를 이용만 하고 버렸다”고 주장했다. 휴가 후 미복귀로 탈영신고가 접수됐고, 김씨는 곧바로 강원도 모 전방부대에서 출동한 DP에 의해 수사과로 호송됐다.
차마 웃지 못할 탈영병도 있다. 2015년 1년여간 DP 임무를 수행한 박준혁씨는 “정말 웃긴 놈이 있었다”며 자신이 겪은 탈영병 일화를 소개했다. ‘마블스튜디오’의 열혈 팬이었던 일병 조승민씨는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 일자를 맞춰 휴가 계획을 짰다. 하지만 영화 개봉일을 착각한 조씨는 복귀예정일 다음 날 개봉하는 영화를 보겠다며 탈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자택에서 체포된 조씨는 “정말 영화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군 헌병대 출신 기자가 전하는 숨 막혔던 '진짜' D.P. 이야기]
▶①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