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 중립 훼손한 산업부 1차관 스스로 물러나라

입력 2021-09-09 04:02
산업통상자원부 박진규 1차관이 최근 내부 회의에서 ‘대선 주자들이 공약으로 받아줄 만한 어젠다를 발굴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선거에서 엄정하게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선거에 적극 개입하려는 행위인데다, 차기 정권에 줄을 대는 시도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보도된 뒤 산업부는 “새로운 정책 개발 시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나오면서 산업부의 엄호는 무색해졌다.

박 차관은 지난달 31일 미래 정책 어젠다 관련 회의에서 “어젠다들이 충실하게 잘 작성됐으나 정치인 입장에서 ‘할 만하네’라고 받아줄 만한 게 안 보인다”며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우리 의견을 내면 늦으니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여러 경로로 의견을 많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젠다가 충실하게 나왔으면 된 것이지 그걸 왜 정치인의 구미에 맞춰야 하는지, 또 대선 후보가 확정된 이후에 그걸 내면 왜 늦는 것인지 모르겠다. 추후 조직 개편 등과 관련해 부처의 이익이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보다 부처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근시안적이고 약삭빠른 행동일 뿐이다. 각 부처와 공무원들은 선거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 쓰지 말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면 된다. 대선 공약을 개발하는 건 공무원의 업무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차관의 발언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며 “차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강력히 경고하면서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인데, 고위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언행을 보인 박 차관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문 대통령은 다른 부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산업부 한 곳만, 박 차관 혼자만 저러고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들이 선거판에 기웃거리고 유력 후보에 줄을 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적발되는 공무원은 엄중히 문책해 흐트러진 공직 사회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