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주범은 석유·천연가스” 화석연료 돈줄 죄는 선진국

입력 2021-09-11 04:05

흔히 기후변화의 주범은 석탄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의 온실가스 배출 1위 자리를 지켜온 탓이다. 그러나 집중 견제를 받는 석탄 뒤에 숨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천연가스와 석유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석유·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 전반에 대한 공적 금융을 중단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탈석탄’만을 외치면서 오히려 석유·천연가스 개발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석유·천연가스 탄소 비중 55%

10일 국민일보가 국제과학 공동협의체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2019년 기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생시키는 비중은 각각 34%, 21%였다. 이 둘을 합하면 전체 이산화탄소의 절반 이상으로, 기후변화 주범 석탄(40%)을 크게 상회했다. 세계는 ‘탈석탄’에 집중해왔지만 더 큰 문제가 상존했던 것이다.

특히 천연가스는 석탄보다 비교적 ‘친환경적’이라는 인식 속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모든 에너지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을 가스복합발전으로 대체하면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연가스는 발전 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석탄과 다르다. 탐사·채굴, 운송 등 생산 과정에서도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때문에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였을 때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생산과정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비교해야 한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생산부터 최종 소비까지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55~6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를 고려하면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친환경적’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공적 금융 중단하는 선진국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늦게나마 석탄뿐 아니라 석유·천연가스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16일 화석연료의 채굴 운송 발전 등에 대한 세계은행 등 다자간개발은행(MDB)의 금융 제공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대출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2023년 회계연도부터 신규 배정액의 33%를 ‘기후중점 투자’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도 지난 4월부터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정부의 신규 자금조달은 없을 것이며 ‘매우 제한적’ 예외를 두겠다고 밝혔으며, 유럽투자은행(EIB)과 스웨덴 수출신용공사도 화석연료에 대한 금융 제한에 나섰다.

이러한 결정에는 앞으로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가정하에 화석연료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지난 5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전제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요가 각각 75%, 55%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신규 석유·천연가스 개발이 불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석유·천연가스, 석탄 금융의 13배

반면 국내에서 석유·천연가스에 대한 논의는 저조하다. 오히려 탈석탄이라는 해묵은 구호 아래 지난 10년간 석유·천연가스 사업에 막대한 공적 금융이 흘러 들어갔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이 지난달 31일 석유·천연가스 관련 사업에 대한 국내 공적 금융기관들의 지원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한국산업은행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 석유·천연가스 사업에 무려 141조1804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같은 기간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제공된 공적자금인 11조1418억원의 13배에 달한다.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2016~2018년 3년간 주요 20개국(G20) 중 중국에 이어 화석연료 사업에 두 번째로 많은 공적 금융을 제공한 국가로 등극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들 사업에 대한 공적 금융은 ‘좌초자산’ 위험을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솔루션은 가스발전에 대한 불필요한 자본 투자와 영업현금흐름 감소로 인한 좌초자산 위험이 2060년 600억 달러(7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2010년부터 한국전력은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에 약 8300억원을 투자했지만, 환경 문제로 호주 독립평가위원회가 반려 결정을 내리면서 사업이 좌초됐다”며 “화석연료에 대한 시장의 외면이 계속되면 석유·천연가스 개발에 대한 투자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석유·천연가스 사업에 공공성을 지닌 공적 금융기관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말로만 친환경을 외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