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헌병 군무이탈체포조(DP)에 대한 관심이 크다. 드라마는 DP 출신 작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군대의 고질적 병폐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실제 DP의 생활은 어땠을까. 육군 헌병대 출신 국민일보 기자가 DP병들의 특별한 일화를 취재했다. ①숨 막혔던 실제 탈영병 추적기를 시작으로 ②탈영병들의 속사정 ③ DP 되는 법까지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모두 가명처리했다.
탈영병 추적은 입대 직전 그들의 흔적을 밟아나가는 과정이다. 가족부터 여자친구, 주변 지인을 찾아가 수소문하고 그가 갈 만한 곳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찾아다닌다. 영화에서 형사가 범인을 쫓는 과정과 흡사하다.
DP들이 꼽는 탈영병의 주요 은둔지는 피시방과 찜질방이다. 다중이용시설로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비교적 적은 돈으로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다. 몸을 숨길 장소로는 안성맞춤이라, 주소지 인근 두 곳은 가장 먼저 수색하는 ‘1번지’다.
14군번 김창현씨는 일병 2개월 무렵, 처음 탈영병 체포를 나갔다. 담당 수사병으로부터 “○○피시방 42번 자리에서 그의 아이디로 접속 기록이 감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탈영병이 현금을 인출하거나 포털사이트 아이디로 접속하면 그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즉각 담당 수사과에 전달된다.
서울 강동구, 탈영병의 주거지 인근 피시방을 찾아가 42번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피시방 주인은 23시간 넘게 앉아 있던 사람이며 단골손님 같다고 했지만 확인해보니 탈영병이 맞았다. 탈영병은 국내 1인칭슈팅게임(FPS)으로 대표되는 서든어택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군대에서 나와서 하는 게 고작 군대 게임이라니, DP가 된 후 첫 실제 상황이라 심장이 벌렁벌렁했는데 막상 탈영병을 보곤 웃음이 터졌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사수와 함께 탈영병이 1평 남짓한 화장실로 이동하자 뒤따라갔다. “김상곤씨 맞습니까? 사단 헌병대에서 나왔습니다.” 사수의 말에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탈영병의 동공은 흔들렸고 손발을 오들오들 떨었다. 김씨는 그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를 포박한 후 시민들 눈에 띄지 않게 가방에서 흰 수건을 꺼내 수갑을 가렸다. 가장 빠른 대중교통을 예약했다. 고속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양옆에서 그를 호송했다.
14군번 박현성씨는 열댓 번 나갔던 실제 체포 활동에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델 출신 정현준씨는 187㎝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전형적인 미남이었다. 첫 대면은 수사병으로부터 포털사이트 아이디로 접속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그가 있던 피시방으로 갔을 때였다. “헌병대에서 왔다”고 하자 정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대부분의 탈영병이 헌병에게 잡히면 순순히 포박에 응하는 것과 달랐다.
한낮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정씨는 경기도 수원 외곽, 작은 동네 슈퍼마켓으로 뛰어 들어갔다. 박씨는 숨이 차 헐떡대며 “방금 들어온 사람 어느 쪽으로 갔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왼쪽으로 갔다”는 답변을 듣기가 무섭게 뛰어나왔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모델 출신 정씨가 탈영병인지 알 턱 없었던 주인은 짧은 머리의 박씨를 오히려 조폭으로 생각해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얼마 전 잘생긴 범죄자를 영웅시하는 팬클럽 기사를 봤는데 그때가 생각나더라”고 했다. 외모지상주의는 군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씨는 이틀 후 수원역에서 다시 정씨를 마주했다. 박씨를 알아본 정씨는 8차선 도로를 그대로 직진해 도망쳤다. 박씨는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던데 정씨가 딱 그랬다”며 “내가 우사인 볼트의 다리를 갖고 있었어도 그를 잡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그날 부사수와 함께 정씨 주소지 인근의 찜질방 5곳을 수색한 후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허무하게도 다음 날 오전 10시쯤 상급 부대 DP한테 정현준을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상급 부대 DP가 찜질방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 옆에 자고 있던 사람이 정씨였다고 했다. 박씨는 “DP끼리 우스갯소리로 ‘탈영병은 항상 얻어걸린다’라는 말을 한다. 꼭 내 손으로 잡고 싶었는데”라며 “그날 추격전은 여전히 깊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사실 탈영병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출동한 DP들은 위수지역 없이 전국을 넘나든다. 등본상 주소지와 출신 대학교, 교제하는 이성이 있는 곳이 다 다르면 인근 사단 헌병대에 일일이 수사 공조를 요청하고 직접 찾아가보는 수밖에 없다.
08군번 이순혁씨는 실제로 탈영병 하나를 잡기 위해 전국을 누빈 경험이 있다. 그는 “탈영병이 다니던 대학교가 전라도라 주소지가 그쪽이었다”며 “실거주지는 서울이고, 여자친구는 경남 창원에 살고, 부대는 강원도라 그를 잡으려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통상 탈영병이 발생하면 여자친구, 가족, 친척, 지인 순으로 서서히 탐문 대상을 좁혀가며 조사한다. 당시 탈영병의 부모님을 면담했음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박씨는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주에서 발품팔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결정적 단서는 가까운 데서 나왔다. 담당 수사관이 근무 중인 부대로 찾아가 중대장, 행정보급관 등과 면담한 결과 후임병으로부터 “새로 만난 여자친구가 창원에 산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결국 해당 탈영병은 당시 교제하던 여성의 집에서 체포됐다. 박씨는 “그때 이후 친했던 간부나 병사들부터 파악해 수소문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등잔 밑에서부터, 최근 정보를 먼저 추리는 게 핵심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군 헌병대 출신 기자가 전하는 숨 막혔던 '진짜' D.P.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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