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강감찬함 장병 가혹행위에 극단 선택”

입력 2021-09-08 04:05

해군 소속 병사가 선임병들에게 구타와 집단 따돌림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 병사는 상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같은 배 안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지속적으로 2차 가해를 당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들에게 구타, 폭언, 따돌림을 당한 고(故) 정모 일병이 지난 6월 18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어학병으로 해군에 입대한 지 7개월여 만이다.

센터에 따르면 정 일병은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강감찬함에 배속되자마자 선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선임들은 전입 열흘 뒤 정 일병이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2주간 휴가를 다녀온 것을 문제 삼았다. “꿀을 빤다” “신의 자식이네” 등의 발언을 하며 정 일병을 괴롭혔다고 한다. 정 일병이 갑판에서 실수하자 가슴과 머리를 밀쳐 넘어뜨리는 일도 있었다. 정 일병이 승조원실에 들어오면 우르르 나가버리는 등 집단 따돌림도 있었다고 센터는 설명했다.

정 일병은 지난 3월 중순 상부에 괴롭힘 사실을 처음 알렸다. 하지만 함장은 가해자가 아닌 정 일병의 선실과 보직을 바꾸는 조치에 그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 일병은 계속해서 같은 배 안에서 가해 병사들과 마주쳐야 했다. 센터는 육상 부대와 달리 좁고 고립된 공간에서 2차 가해가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 일병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전입 직후 상관에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던 그는 배 안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정신과 치료약을 복용하며 이전에 없던 구토나 공황장애도 호소했다. 결국 함장은 정 일병을 하선시켜 민간병원에 위탁 진료를 보냈다. 최초 신고 20일 만이었다. 하지만 퇴원한 뒤 휴가를 받고 배를 떠난 정 일병은 숨진 채 발견됐다.

센터는 해군이 정 일병의 사망 후에도 가해자들을 수사하지 않았고, 함장 등 수뇌부에 대한 인사 조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강감찬함은 앞서 청해부대에 파견된 문무대왕함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아프리카 해역으로 급히 보내졌다. 정 일병 사망 열흘 뒤였다. 센터는 “정 일병은 여러 차례 지휘관에게 SOS를 보냈지만 방치당했다”며 “해군은 가해자들의 신상을 확보하고, 함장·부장을 소환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현재 사망 원인과 병영 부조리 문제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