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거기 왜?… 경주 월성서 또 ‘인간 제물’ 흔적

입력 2021-09-08 04:05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7일 공개한 경주 월성 서쪽 성벽 아래에서 출토된 성인 여성의 인골. 목걸이(경식)와 팔찌도 함께 출토됐다. 성이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제의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북 경주 월성은 왕궁을 둘러싼 신라 왕성으로 너비 40m, 높이 10m의 거대한 토성이다. 공사 기간만 50년 이상이 걸렸다. 2017년 월성 서쪽 성벽에서 성을 쌓을 때 인신공희(人身供犧) 제물로 바쳐진 50대 남녀 인골 2구가 확인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인신공희는 신라가 최초로 축조한 월성에서만 유일하게 나왔다. 그때 인골이 발견된 지점에서 50㎝ 떨어진 곳에서 인신공희 성인 여성 인골 1구가 새로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7일 월성 현장에서 추가 발굴 성과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이번에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했다. 20세 전후로 추정되며 키가 약 135㎝ 전후로 체격은 왜소하다.

국립경주연구소 김원석 학예관은 “2017년의 50대 남녀 인골이 먼저 묻힌 다음 이번 인골이 묻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적 격차가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동시에 묻힌 것 같다”면서 “세 인골 모두 치아 상태로 미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하층 계급 출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골은 모두 하늘을 보고 똑바로 누운 자세였다. 시신을 곧게 펼 수 있도록 죽은 이후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 인골은 모두 성의 기저부 아래 성벽 돌과 평행한 상태로 묻혔다.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에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제의를 치르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층위에서 말 소 등 포유류의 뼈가 늑골 부위만 추려져 흩뿌려져 있는 점, 인골 주변에 술 등 액체를 담는 토기가 포개져 있는 점 등도 인신공희를 뒷받침한다.

학계의 관심은 1985년과 1990년 월성 밖에서 발굴된 인골 20여구의 정체에 쏠린다. 당시 인골은 인신공희 지점에서 성벽 비탈 아래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박성진 연구관은 “이들 인골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인신공희와 비슷한 맥락에서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 조사 결과로 월성 축조시기를 둘러싼 논란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등장하지만, 그보다 약 250년 늦은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이지만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돼 있다.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와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연약한 지반을 보강했다.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공사에선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