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288g 생존율 1%… 초미숙아 건우가 쓴 ‘153일의 기적’

입력 2021-09-07 04:02
국내에서 가장 작게 태어나 153일간 신생아집중치료를 받은 조건우(5개월) 아기의 부모가 지난 3일 주치의 김애란(오른쪽)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와 함께 아이의 퇴원을 기뻐하고 있다. 의료진은 지난 4월 288g의 체중으로 태어난 건우를 어서 건강해지라는 의미에서 ‘팔팔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체중 288g, 키 23.5㎝. 국내에서 가장 작게 태어난 아기가 1%도 안되는 생존 한계를 뚫고 건강하게 자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다섯 달 동안 의료진과 부모의 헌신이 만들어낸 생명의 기적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은 지난 4월 4일 임신 24주 6일 만에 1㎏ 미만의 초극소저체중미숙아로 태어난 조건우(5개월) 아기가 153일간 신생아집중치료를 끝내고 지난 3일 퇴원했다고 6일 밝혔다. 성인 손바닥 한 폭에 들어올 정도로 자그마했던 아기는 퇴원 때 체중 2.1㎏으로 7배 정도 성장했다.

400g 미만 초미숙아의 생존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특히 200g대 생존 사례는 국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2018년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302g이 국내 최저 기록이었다. 미국 아이오와대가 운영하는 400g 미만 초미숙아 등록 사이트에는 현재 286명이 올라와 있는데, 건우는 32번째 작은 아기로 등재될 예정이다. 국내에서 한 해 태어나는 1.5㎏ 미만 미숙아는 3000여명에 달한다.

건우는 결혼 6년 만에 선물처럼 찾아온 첫 아기였다. 그런데 임신 17주 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태아가 자궁 안에서 잘 자라지 않는 ‘자궁 내 성장지연’이 심해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겠다는 심정으로 부모는 지난 3월 말 경남 함안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의료진은 태아 크기가 정상 임신 주 수보다 5주가량 뒤처질 정도로 작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태아가 버텨주는 한 임신 주 수를 최대한 늘려보기로 하고 집중치료에 들어갔다. 하지만 태아가 위험해지는 최악 상황을 막기 위해 결국 응급 제왕절개로 출산해야만 했다. 작은 손발을 꿈틀거리는 건우에게 의료진은 어서 건강하고 팔팔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날 때 체중을 거꾸로 해 ‘팔팔이(882)’로 불러줬다.

예정일보다 15주 일찍 세상에 나온 건우는 폐포(공기 주머니)가 완전히 생성되지 않아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했으나 곧바로 기관지 내로 폐 표면활성제를 투여받은 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초긴장 상태에서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엄마, 아빠의 노력도 큰 힘이 됐다. 아기에게 모유를 전달하기 위해 1주일에 한두 번씩 새벽 3시에 함안에서 서울까지 왕복 10시간 거리를 오갔다.

의료진과 부모의 소원대로 건우는 고비마다 놀라운 힘을 보여줬다. 태어난 지 한 달째 잘 뛰던 심장이 갑자기 멎는 위기의 순간에도 잘 버텨줬다. 엄마 이서은(38)씨는 “건우는 우리에게 축복처럼 찾아온 아이로 어떤 위기에서도 꼭 이겨내고 싶었다. 가장 작게 태어났지만 가장 건강하고 마음까지 큰 아이로 잘 키우겠다”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주치의 김애란 신생아과 교수는 “생명의 위대함과 감사함을 일깨웠다. 아이가 온전히 퇴원해 다행이고 기쁘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