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위하여

입력 2021-09-08 03:05

하나님과 만남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서 욥의 고백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사모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중요한 힌트를 준다.

먼저 욥은 하나님께 질문한다. “주님, 제가 묻겠습니다. 저에게 알게 해주십시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은 이전에도 하나님께 자주 질문했다. 그러나 그때는 선입견 속에 하나님을 판단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4절의 질문은 자연과 우주와 영적 세계를 통치하시는 경이로운 하나님을 만나고 드린 요청이었다. 연약함을 인정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거룩한 열정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위해 우리에게 거룩한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알기 위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 삶이 분주해지면 하나님을 잊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상황을 주신다. 그때 마음속에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그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화점이 되는 것이다.

오늘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면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거룩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며 겸손과 갈망으로 하나님을 찾고 마음을 쏟아 놓는 자녀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질문에 답을 주시며 더욱 깊이 만나주신다.

이후 욥은 자신이 삶에서 하나님을 명확히 발견했노라 고백한다. 이전 욥이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귀로 듣는 차원이었다. 관념적인 지식이었다. 그러나 멀게 느껴지던 하나님의 존재가 이제는 눈으로 보는 듯 부인할 수 없는 확신으로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우리가 발견할 수 없거나 만날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시고 명확히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간접적인 차원으로 만나기를 원치 않으신다. 인격적으로 마치 대면하는 것처럼 분명히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것이 어렵게 느껴지는가.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앞에 있는 3절에 해답이 있다. 요약하면 무지와 교만이다. 무지와 교만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무지와 교만을 꺾어야 한다. 겸손히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함으로 교만을 꺾어야 하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무지를 꺾어야 한다. 이것을 꺾으면 하나님과 만남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명확하고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완고히 주장해왔던 과거의 모습을 미워할 만큼 후회하고 스스로 거두어들인다. 철저한 자기 부인이다. 그리고 비통함으로 마음을 돌이켜 회개한다. 자기 부인과 회개는 좋은 짝이다. 이러한 자기 부인과 회개는 단호한 방향 전환을 가져온다.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돌아감,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방향을 모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무나 분명하다. 이미 성경 말씀으로 나와 있기에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조금만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읽으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 전환과 순종의 길을 택하는 결단이다.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를 외치며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미련한 걸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지혜로운 걸음을 옮기자. 그리고 그 걸음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자.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