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감염병 관리 개혁, 의료체계 정상화부터

입력 2021-09-07 04:04

지난 2일 보건복지부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노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의 5대 핵심 내용은 ‘코로나19 전담병원 인력 기준 마련’ ‘공공의료 확충 세부계획 마련’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교육 전담 간호사 확대’ 그리고 ‘야간 간호료 확대’다. 가까스로 파업이라는 파국은 피했으나 의사협회의 반발을 막고 향후 합의안 실행을 어떻게 담보해 낼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년6개월간 코로나19 의료 대책은 환자 전담병원과 병상 강제 확보 그리고 선별진료소와 코로나19 병동에 투입할 의료 인력 모집 문제였다. 그러나 투입 인력은 전문성과 숙련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기존 일반 질환 치료의 공백이 발생했다. 그리고 급하게 의료 파견 인력을 구하느라 높은 임금을 제공했는데 기존 간호사와의 격차가 2~3배 가까이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기존 정규 의료인이 사직한 뒤 다시 투입 파견 인력으로 지원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런 임시방편식 대응체계는 지속가능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의료계와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국가감염병관리시스템 개편을 해야 할 이유다.

결론적으로 감염병관리체계 개혁은 국가보건의료체계의 정상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공공의료와 코로나19 전담병원 확충 및 감염관리 의료 인력 기준 등의 정책은 크게는 국가보건의료체계, 세부적으로는 국가감염병관리체계의 틀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돼 정책 간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네 의원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일차 진료와 백신 접종을 담당하고 위중증 환자 진료와 확진 등은 종합병원 혹은 상급종합병원이 주도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염병 ‘책임의료기관’과 같은 공공의료 확충과 감염병 의료 인력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 이것이 위드 코로나 의료체계의 목표이며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이다.

공공의료와 국가방역 역량 강화는 사실 문재인정부의 국정 공약으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출범 후 100일도 되지 않아 2017년 7월 질병관리청 신설, 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 및 지역 공공병원 확충 등의 계획이 무산됐던 뼈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본질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합의와 계획은 환상적이고 달콤하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금번 합의안 역시 과학적이고 지속가능한 보건의료 대안이 아니라 정치 논쟁화가 된다면 실행과 이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과 같은 합의안은 기존 의정협의체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계획으로 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초래하는 상황이 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소속 조합원 중 60% 이상이 간호사이고 의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의대 신설과 의사 인력 확대 정책은 의정 간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 소지자 43만명 가운데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22만명 수준이며 1년 미만 간호사의 사직률은 42.7%에 달한다. 또한 일부 인기 진료과가 아닌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외과, 감염내과 등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필수 의료 분야의 전문의 부족이 심각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 간호사의 숫자만 늘린다고 인력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지난 십수년간 보건의료 분야에 있어서 이런 정치적 합의 혹은 공약을 가장한 소모적 논쟁으로 진영 간 논쟁과 사회 갈등을 초래했다. 지속가능한 국가방역정책 및 관리체계 구축은 ‘방역, 정치, 과학의 권한과 책임의 정상화’와 의사결정 구조의 확립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최재욱(고려대 교수·예방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