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신병을 구속영장 발부 20일 만에 확보했다. 양 위원장은 그간 영장 집행에 비협조적이었던 태도와 달리 충돌 없이 호송차에 올랐다. 새벽 기습 작전으로 저항하기 어려웠던 상황적 요인, 총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7·3 불법시위 수사본부는 2일 오전 6시10분쯤 양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달 13일 이후 20일 만이고, 같은 달 18일 1차 구속영장 집행이 무산된 지 15일 만이다. 경찰은 수사 인력 100여명을 포함해 41개 부대 3000여명을 동원해 오전 5시28분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건물에 진입했다. 이후 40여분 만에 양 위원장을 체포했다. 체포 당시 양 위원장은 별다른 저항 없이 서울 종로서로 향했다.
연행 소식이 전해진 후 민주노총 조합원 70여명은 양 위원장이 입감된 종로서와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사옥 앞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상 초유의 폭거”라며 “문재인 정권의 탄압을 오는 10월 20일 총파업으로 갚겠다”고 외쳤다. 경찰은 집결 장소 인근에 병력을 배치하고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때마다 조합원들은 “이럴 줄 모르고 위원장을 잡아갔느냐”고 소리쳤다.
이날 양 위원장이 충돌 없이 연행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먼저 경찰의 영장 집행 요구가 기습적으로 이뤄져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현실적 이유가 꼽힌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경찰 진입 당시 사무실에는 양 위원장과 당직자 2명만 있었다. 1차 연행 시도 때 경찰 10여명만 건물을 찾아왔기 때문에 민주노총 측도 양 위원장 보호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영장 집행 마지막 기회로 보고 이날 이른 시간부터 대규모 인원을 동원했다. 경찰 차량 50여대와 충돌을 대비한 고가사다리차, 구급차까지 동원됐다.
민주노총과 양 위원장이 다음 달로 예정된 총파업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는 “스스로 신병을 넘겨주면서 ‘국가에 의한 탄압’이라는 피해 프레임을 앞세워 총파업의 동력을 확보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한 조합원은 “한국 노동의 심장에 쳐들어와 수장을 끌고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양 위원장은 구속되면서까지 ‘총파업을 잘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공권력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데다 최근 민주노총을 향한 여론 악화가 부담이 됐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택배 대리점주가 노조와의 갈등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최근 여러 악재가 있었다”며 “구속을 통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가 작용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