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코로나 대응 급한 불 껐지만… 합의 이행까지 먼 길

입력 2021-09-03 04:03
서울 성북구 고대의료원 안암병원에서 2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 지부 조합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이날 새벽 정부와 합의하면서 예정됐던 산별 총파업은 열리지 않았지만 고려대학교 의료원 등 개별 노조 일부는 별도 파업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선 보건의료인들이 총파업 5시간을 앞두고 정부와 합의점을 찾았지만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정부가 합의한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 인력 처우개선 등을 위해선 당장 이달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는 2일 오전 2시10분쯤 제13차 노정 실무협의에 따른 합의문에 공동 서명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오전 7시에 예고됐던 총파업을 철회했다. 노조가 파업 의사를 접으면서 의료공백과 코로나19 대응 현장에서의 혼란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노정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예산 확보와 제도적 절차 마련 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당장 정부는 코로나19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근무 간호사 배치 기준을 이달 내 마련하고, 세부 실행 방안을 10월까지 내놔야 한다.

노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칠 대로 지친 간호사들을 위해 적정 인력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노조는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인공호흡기 치료 중인 최중증 환자는 환자 1명당 간호사 2명, 준중증 환자는 간호사 1명당 환자 1명(회복기 2명)을 배치하라고 제시했다. 경증환자는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간호하도록 하되 장시간 돌봄이 필요한 정신질환자, 치매 환자, 요양환자는 1대 1로 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준을 맞추려면 당장 병원은 인력을 채용하고 환자 수를 조정해야 한다.

간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한 병원에 가산료를 주는 간호관리료 차등제(간호등급제)도 손본다. 이 제도는 오랫동안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아닌 병상 수로 등급을 계산해 병상 가동률이 낮은 중소병원에는 인력 확보를 위한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이에 2018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로 등급을 내도록 변경됐으나 3개월 평균으로 적용돼 간호사의 업무 부담은 여전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3개월 평균치로 계산하다 보니 간호사 1인당 돌보는 환자 수가 선진국에 비해 많은 게 현실”이라며 “하루 정도를 평균으로 계산해서 실제 돌보는 환자 수를 줄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개편안은 2022년에 마련해 2023년 시행하기로 했다. 또 ‘생명안전수당’으로 불리는 감염병 대응 의료인력의 지원금은 제도화한 후 2022년 1월 시행키로 했다.

정부는 간호사 교대 근무제 개선에 대한 노조 요구도 받아들였다. 노정은 규칙적인 교대근무제를 포함한 시범사업 방안을 마련해 2022년 3월 내 시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야간간호료 및 야간전담간호사관리료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2022년 1월부터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키로 결정했다.

공공의료 강화와 관련해선 2024년까지 권역 감염병전문병원 4곳을 설립·운영키로 했다.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을 지정·운영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공병원 설립 요구가 큰 울산 광주 등 6곳에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논의해 병원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의료인력의 확대를 위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 필수의료분야에 의사를 배치하는 지역의사제도 도입 방안도 합의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는 의사단체의 반대가 극심한 부분이어서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직접 당사자인 의협과 논의도 없이 파업을 막아보려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노조와 타협했다”고 날을 세웠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