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책정리 하는 척

입력 2021-09-03 04:05

집에 가장 많은 것. 단연 책이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살 때는 본능만 있다. 지출을 좀 아껴야 한다는 생각, 책장에 꽂을 곳이 없다는 생각, 바닥에 쌓아두기 시작한 책들이 집 안의 일상생활에 잔잔한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 그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책을 살 때는 하지 않는다. 아니, 한다. 다만 그 생각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약간 복잡한 이사를 앞두고 그간 내가 사들인 책이 한곳에 다 모였다. 부모님 댁에 살면서 내가 샀던 책과 혼자 살면서 산 책들이 거실에 펼쳐졌다. 조금 과장을 보태 예전에 종종 했던 카드게임이 떠올랐다. 두 장의 똑같은 카드를 뒤집는 게임. 어마어마한 책 무더기 속에는 같은 책이 제법 많았다(세 권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게임하는 기분으로 그것들을 가려냈다.

나는 집에 책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이 싫다. 어떤 물건이 지나치게 많아져 그것이 ‘덩어리’처럼 되는 것이 싫다. 그럼 아예 건드리고 싶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 책들은 집 안에서 충분히 덩어리처럼 보일 만큼의 양이었다. 과감하게 책들을 분류했다. 마음이 떠난 책들을 수갑으로 체포하듯 노끈으로 거세게 묶었다.

책 다발을 헌책방에 가져갔다. 아저씨는 대충 보시더니 나에게 “이 책들을 다 읽으신 거예요?” 하고 물었다. 나는 읽은 것도 있고 읽으려다 실패한 것도 있고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아무거나 한 권 집어 들어 내부를 살폈다. 내가 읽으며 접어놓은 수많은 도그지어와 밑줄을 보시면서 “하이고” 하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지저분하게 읽은 책은 값을 많이 못 쳐준다는 말씀을 하시려나 보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답은 “책 열심히도 보셨네”였다. 아저씨는 따님으로 보이는 직원분에게 2만5000원 챙겨드려 하고 사라지셨다가 다시 나타나서 “아니 2만7000원 챙겨드려” 하셨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책 진짜 그만 사야지 같은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