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가 코로나19 4차 유행 한가운데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을 검토한 주요 배경에는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개선 의지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길게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 지난 6년, 짧게는 코로나19 이후 1년7개월간 공공의료 강화와 관련 인력 확충 등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선진국에 비해 공공의료 비중이 낮은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왔다. 그간 공공병원 확충, 인력 증원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면서 공공의료의 역할이 더욱 커졌지만 사후 대책 이행이 부실했다고 판단한다. 코로나19 사태만이 아니라 향후 신종감염병 등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보는 것이다. 보건의료 인력의 희생으로 공공의료의 구멍을 메우는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강연배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1일 “정부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코로나19 이후 1년7개월간 기자회견만 수십 번 했으나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간호사 1명이 환자 몇 명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이 계속 (업무에) 밀어 넣었다”고 했다. 이어 “지방의료원이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운영되면서 갈 곳이 사라진 취약계층의 의료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비슷한 요구가 있었지만 흐지부지 됐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인식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메르스 이후 국가 감염병전문병원 설립과 일상적인 재난 대비를 위해 광역거점공공병원,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도 2018년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지난해 공공보건의료 강화 대책 등 나름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공병원의 수를 늘리기보다 기존 공공·민간 의료기관을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해 공공병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 또 지방의료원 20곳을 신·증축하겠다고 했으나 대부분 낡은 건물을 이전 신축하거나 증축하는 것이었다. 새로 짓겠다는 공공병원은 3곳뿐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지난해 7월에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공공의료 강화가 아닌 비대면 진료 계획을 앞세웠다.
다만 담당 부처인 복지부 입장에선 강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은 결국 예산 문제이기도 해 기획재정부와 논의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와도 협의해야 한다. 정부는 간호사 한 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본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환자수 기준을 마련하면 전반적인 간호인력 수급이 달리고 특정 병원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공의료 인력을 확대하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 등의 방안을 내놨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후 2시40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제13차 노정 실무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으려 했다. 그간 입장 차가 컸던 코로나19 현장의 인력 기준, 환자 1인당 간호 인력 기준 마련, 공공병원 신축 등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협의에 앞서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새로운 감염병이 생기더라도 공공인력의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인프라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최예슬 송경모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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