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류학자이자 행동파 지식인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는 세상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일자리가 전체의 40%라고 주장한다. 40%라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증언과 보고서들을 통해 자신의 직업과 업무에서 무의미함이나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 직업을 ‘불쉿 잡’(Bullshit Jobs)이라 부른다. 이 신조어는 저자가 2013년 한 온라인 매체에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처음 사용한 후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저자는 책에서 불쉿 잡을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로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는 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사모펀드 CEO, 광고 조사원, 보험설계사, 텔레마케터, 집행관, 법률 컨설턴트 등을 예로 들었다.
책은 불쉿 잡의 유형을 제시하고 종사자들의 실태와 심리적 상처 등을 드러낸다.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직업에서도 점점 더 불쉿 업무의 분량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쉿 직업과 업무는 왜 늘어날까. 저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에서 원인을 찾는다. 금용 보험 부동산 등 FIRE 부문은 1990년대에 이미 전체 경제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영역에서 불쉿 잡이 급증한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대를 목표로 하는 정부 정책도 불쉿 잡 증가에 기여한다.
저자는 불쉿 잡의 증가를 노동과 직업 세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한다. 불쉿 잡 종사자들이 높은 보수를 받는 반면 필수 노동자들은 낮은 보수를 받는 현실에 대해 ‘이것이 공정한가’ ‘현대인들은 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개념을 별개로 생각하게 됐는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불쉿 잡을 없애기 위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과 생계가 분리된다면 사람들은 진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