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입력 2021-09-04 04:07

2년 전 경찰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날 단독 보도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제 취재원을 만나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의 제보자는 사건 내막을 발설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신변에 심각한 위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공익을 위한 수사 협조와 취재원 보호 사이에서 꼬박 하루를 고민했습니다. 취재원을 지키기로 했고,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중재’ 탓에 취재원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퇴근길에 후배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정치인 비리 제보를 받고 취재 중이라고 했습니다. 후배는 “쓸 수 있을 때 많이 쓰려고요”라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후배가 아주 오랫동안 이런 취재를 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부패한 정치인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치열한 기사로 정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후배들의 기사가 법으로 ‘중재’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알 권리 침해를 무겁게 느끼고 또 무섭게 여겼으면 합니다. 이른바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입법화되면 언론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징벌’일 테지만, 권력 감시형 보도가 통제되는 사회를 살아갈 시민들이 떠안을 위험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 있는지 끝까지 따져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정 언론중재법이 있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린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나 대법원장 재임 당시 양승태의 사법농단은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했던 정보기술(IT) 업계의 자정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맥도날드의 비윤리적 경영을 수면 위로 올린 건 누구였나요. 그 중심에는 용감한 제보자와 과감한 언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은 제게 언론의 역할은 감시하고, 질문하고, 알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기사를 쓸 때 옳은 방향을 찾고 정의를 묻고 혐오를 털어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여전히 많은 기자가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취재원의 입이 열릴 때까지 인내합니다. 지금도 제 옆에 앉은 기자는 여러 망설임과 숙고를 쌓아가며 수십 번의 질문을 던지는 중입니다. 빈대도 못 잡을 거면서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공공기관에서 조직적으로 성범죄를 은폐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증거도 확보했습니다. 기사가 나간다면 며칠에 걸쳐 격렬한 항의 전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를 해야겠지요. 민원 처리보다 감춰질 위기에 놓인 진실을 더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이 법안이 기어이 통과되면 제 고민은 달라질 것입니다. ‘기사 방향’이 아닌 ‘보도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주저함으로 허비하게 될까요. 유사한 비리가 또다시 발생했을 때 한 번 더 질문하지 못한 저 자신을 탓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의·중과실’ 같은 모호한 기준은 누굴 위한 것인가요. 여느 민형사 소송과 달리 ‘고의·중과실’이 아니었다는 걸 입증하는 건 피고 입장인 언론의 몫이 되겠지요.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조치는 취재원을 공개하는 일일 겁니다. 공익제보자의 입을 막았을 때 사회에 도래할 암담함을, 언론에 재갈을 물렸을 때 통제받지 못한 권력이 지닐 교활함을 저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정 언론중재법의 수혜자는 정말 시민인가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짜뉴스와 오보를 바로잡는 일은 언론의 과제겠지요. 언론이 잃어버린 대중의 신뢰를 되찾는 방법은 탄압이 아니라 적극적인 알 권리 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로 잃은 신뢰는 기사로 되찾고 싶습니다. 공익과 사심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매 순간 정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나태하고 무력한 기자는 안전한 기사를 쓸 것입니다. 이 법을 훌륭한 방패로 삼으면서요. 위험한 진실을 들추는 일은 몇 배 수고롭지만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면 기자 대부분 ‘안전’ 대신 ‘위험’을 선택할 것이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저 역시 고민 없이 매몰된 정의를 매섭게 파헤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끝까지 질문하지 못한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박민지 사회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