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단 총회장에 취임했을 때, “우리 교단의 위상을 세우고 화해 총회를 이루는 동시에, 우리 교단 주도로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취임사에서도 무너진 예배를 세우고 한국교회 공익을 지키기 위해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교단부터 하나가 돼야 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옥구슬 같은 말에도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들어준다. 영국 왕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 의원을 다 초청한다. 그래서 영국 의회는 극한으로 가다가도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코로나의 위기적 상황이었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우리 교단 목사장로기도회 때 갈라콘서트를 공연했다. 우리 교단은 오로지 순수한 신학 하나를 지키기 위해 허허벌판으로 나왔다. 그때 신학적으로는 박형룡 박사님, 정치적으로는 정규오 목사님이 교단의 초석을 든든하게 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턴가 이영수 목사님이라는 혜성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그는 경기도 양지에 23만평을 헐값에 사서 총신신대원을 세웠다. 또한 당시는 배밭이었던 대치동의 땅을 사들여 노른자 같은 총회회관을 세웠는데, 지금은 금싸라기 같은 땅이 아닌가. 그리고 2550명 넘게 파송한 총회세계선교회(GMS)의 기초를 세웠다.
물론 무모할 정도로 일을 추진하다 보면 경쟁 세력이 생긴다. 그래서 정규오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과 이영수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1979년 개혁과 합동으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 상황적으로 개혁 교단에서 신학 공부를 해야 했다. 오랜 세월 이영수 목사님을 부정적 교권주의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5년 전 정규오 목사님의 회개와 결단이 있었고 구 합동 측 서기행 총회장님과 구 개혁 측 홍정이 총회장님이 그 뜻을 받들어 정말로 합동을 이루게 된다. 구 합동 측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구 개혁 측에 많은 배려와 아량을 베풀어 주지 않았더라면 합동은 불가능했다. 나는 교단 통합 이후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던 이영수 목사님이 정규오 목사님을 능가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후, ‘불의 연대기’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그중 정규오 목사님의 ‘마지막 후회와 소원’이라는 노래가 있다. “타오르라 타오르라 외쳤던 불의 이름들/ 마지막 등불도 꺼져버린 캄캄한 밤 찾아오기 전/ 우리들의 깨진 조각 보혈로 깨끗케 씻어/ 하나가 되어 다시 하나 되어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고 당시엔 이미 고인이 되셨던 이영수 목사님이 천국에서 합동의 역사에 화답하는 노래를 소환시켰다. “아 이럴 수도 있나요/ 헤어졌던 우리 하나가 되다니/ 나누어진 강이 어찌 하나 될 수 있나요/ 은혜로다 은혜로다/ 오 주여 이 은혜를 천국에서 지켜보다니요.”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갈라콘서트를 보는 교단의 모든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무조건 하나가 되어 모두 감동하고 눈물을 훔쳤을 뿐만 아니라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 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나는 우리 교단의 현실을 한국교회 전체에 대입하고 싶다. 우리 교단이 서로 합동함으로써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단이 됐듯, 한국교회 연합기관도 대통합을 이루면 한국교회야말로 로널드레이건호와 같은 항공모함이 될 것이다. 그런 항공모함으로 존재한다면 반드시 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공익과 권위를 위해서라면 원칙과 법,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기보다는 하나 되기 위한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럴듯한 핑계와 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넓은 포용성과 아량,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유는 하나다. 하나 되기 원하시는 주님의 시대적 요구와 갈수록 압박당하는 한국교회 공익과 권익을 지키기 위함이다. 자신의 입장과 눈앞에 보이는 작은 문제, 혹은 손익을 보지 말자. 오히려 우리 모두가 로널드레이건호와 같은 한국교회 공적교회라는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이지스 구축함이 되고 잠수함이 되자.
새에덴교회 예장합동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