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fact)과 진실(truth)은 다르다. 사실은 ‘실제에 있었거나 현재에 있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 문서에 적힌 문장, 통계로 나타나는 숫자 등이 사실인데, 그 자체가 참과 거짓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진짜 사실’이다. 반증 가능한 오류가 없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사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여러 사실로 조합된 그 보도가 진실을 가리키는지 100%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사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사실이 반드시 진실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에서 누명을 쓴 윤성여씨가 30여년 전 붙잡혔을 때 기자들은 그가 범인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 따라 기사를 썼다. 그 기자들은 사실 보도를 했고, 30년간 그 보도는 사실 보도의 범주에 있었다. 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보도였다. 판사들의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하지 진실 보도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을 통해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실을 정확히 아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다. 사실도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수출액 등 숫자로 나타나는 각종 통계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난달 수출액은 ○○○억 달러, 작년 출생아는 ○○만명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정부가 집계하는 절차를 존중하고 그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하는 일 중 기본은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을 찾아낸다. 이렇게 확보한 사실을 갖고 퍼즐을 맞추듯 진실을 좇는다. 때로는 여러 권력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사실을 통한 의혹을 제기한다. 그 의혹이 진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명 날 수 있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합리적인 것인 한 기자의 행위는 보호받아 왔다. 이런 식이 아니면 진실에 접근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언론은 모두 이런 식으로 권력을 감시한다.
논란이 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는 사실과 진실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법안이 핵심적으로 문제로 삼는 건 ‘허위·조작보도’다. 허위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 것’이라는 뜻이다. 이 허위 개념이 법에 포함되면 사실을 다루는 기자의 활동이 진실의 영역으로 확장하게 된다. ‘사실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뿐 아니라 ‘진실이 아닌 것을 보도한 언론’에까지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해진다. 그럼 이때 진실은 무엇인가. 누가 진실을 판단할 수 있나. 진실이라고 판단된 진실은 진짜 진실이 맞을까. 보도의 사실 여부가 아닌 진실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이 나지 않는 논쟁이 된다. 정치가 개입하고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로부터 국민을 구하는 게 목표라면 ‘사실이 아닌 보도’에 책임을 물어야 했다. 사실이 아닌 말이 난무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허위보도 개념을 도입한 것은 이 법안을 지지하는 집단이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방향대로 보도하지 않는 전통 언론을 겁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허위보도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기자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돼 반박이 불가능한 불변의 진실만을 써야 한다. 도달하기 힘든, 모호한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단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법안은 언론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