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아프간 곳곳에선 반대파를 감금·살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과거 ‘인종 청소’ 대상이었던 하자라족 수천명은 보복 우려에 아프간을 탈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아프간 전직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자택 급습, 실종, 살해 등에 관한 보고가 증가하고 있으며 구금 중인 경찰·정보기관 고위직 등 전직 관료가 최소 12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앞서 대외적으로 유화 메시지를 내왔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NYT에 따르면 남서부 파라주의 경찰 책임자였던 굴람 사키 악바리는 지난 27일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고속도로에서 총격으로 숨졌다. 북부 바다크샨주에선 사람들이 자택 밖으로 끌려나가 며칠간 실종되기도 했다.
탈레반은 관련 사건의 책임 소재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있다. 전직 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사건들이 탈레반의 정책에 따른 것인지 대원들의 개인적인 보복인지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탈레반 정책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일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보복 움직임에 하자라족은 이민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하고 파키스탄으로 탈출하고 있다. 파슈툰족이 주축인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에 하자라족을 집단학살하고 여성들을 납치하는 등 탄압한 바 있다. 이슬람 수니파가 주류인 파슈툰족과 달리 아프간 종족의 9%를 차지하는 이들은 시아파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 구성’을 약속한 탈레반 지도부의 발표가 무색하게 탈레반은 이미 하자라족을 위협하고 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탈레반이 농촌지역을 장악한 지난 7월 문다리크 마을에서 탈레반이 하자라족 9명을 살해했다”며 “6명은 총살됐고 3명은 고문받아 숨졌다”고 밝혔다.
반대파에 대한 보복과 유혈탄압이 이어지는 가운데 행방이 불분명했던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하아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지도체제 정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현지 언론은 “아쿤드자다가 지난 4일 동안 칸다하르에 있었다”며 “아프간 상황과 미래 정치 체제 구축을 놓고 회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의 통치방침도 구체화되고 있다. 탈레반 고등교육부장관 대행 압둘 바키 하카니는 이날 “여학생도 공부할 권리가 있지만 남학생과 교실을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재집권 이후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광고판에 실린 여성의 얼굴을 스프레이로 검게 덧칠하는 등 이와 반대되는 행태를 보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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