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경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계부채 비중 자체는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채 증가율보다는 갈수록 둔화되는 국가 경제성장률이 가져올 리스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객원연구위원인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부교수는 30일 예금보험공사 ‘금융 리스크 리뷰’에 실린 기고문에서 한국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7년 61%에서 시작해 2013년 68%, 2016년 77%, 2020년 89%까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국 중에 7번째로 높다.
심 교수는 그러나 이는 가계부채가 과다하다기보다는 민간신용 시장이 발달했다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상위 10개국은 한국을 제외하면 스위스, 호주, 캐나다 등 모두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된 국가다. 반면 하위 10개국 가운데 6개국은 체코, 콜롬비아, 멕시코 등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돼있다.
심 교수는 이 같은 측면에서 “단순히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가 100%에 달한다’는 식의 양적 우려는 막연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가계대출 중 주택금융, 신용대출 등 자산이나 미래소득을 담보로 한 안정적인 부채가 94~96%에 달한다”며 “지금 당장 상환 능력에 문제가 제기되는 게 아닌 만큼 과도한 우려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율보다는 국가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007년에서 2013년까지의 부채비율 7% 포인트 상승은 가계부채 상승이 견인했지만, 이후로는 둔화된 경제성장률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라는 의미다.
심 교수는 다만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상업용 부동산 대출 등이 전체 대출의 95%를 차지하는 현 부채 구조는 성장 동력 측면에서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직접적인 생산 효과를 갖지 못하는 부동산에 자금이 묶여있으면 그만큼 경제 성장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제성장이 지속 둔화하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계속 올라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