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간절함

입력 2021-09-01 03:07

많은 분이 요즘 교회 기도가 이전만 못하다는 반성을 한다. 뜨거움도 깊이도 진정성도 이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 기도하는 사람의 간절함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모든 게 풍족해졌고 어려움을 이길 힘도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더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더 본질적인 것에 간절함을 가지고 간구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드렸던 간절한 기도가 기록돼 있다. 그중에서 간절함의 깊이가 남다른 기도가 있으니 바로 예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드렸던 겟세마네 기도다. 예수님의 기도는 간절하고 또 간절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는 마태, 마가복음과 다른 게 있다. 직접 언급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사명을 포기하도록 방해하는 사탄의 존재가 전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관점에서 겟세마네는 하나님의 뜻을 꺾으려는 사탄과 처절한 싸움이 있는 영적 전쟁터라 할 수 있다.

이런 처절함 속에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 여기서 힘썼다는 것은 반대되는 무언가와 전쟁 같은 대항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근본 사명을 가진다. 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사탄의 유혹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이런 유혹을 이기고 사명을 이룰 힘은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겟세마네에서 보이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라 “힘쓰고 애써” 그 자리를 지킬 때 우리 사명은 이루어진다. 우리의 감정과 의지, 그리고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무릎 꿇는 여러분의 그 자리를 힘써 지키길 바란다.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에서 승리는 경험될 것이다. 이렇게 힘쓰고 애써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한 걸음 더 깊어진다.

“힘쓰고 애써” 드린 기도가 싸우는 기도라면, “더욱 간절히” 드린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하늘 보좌 앞에서의 기도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처음에는 괴로움으로 기도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짐에 따라 괴로움은 또 다른 간절함인 아버지의 뜻을 갈망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사탄은 간 곳 없고 하나님만 보이는 기도로 깊어진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이 여기까지 깊어지기 원한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기 원하는 간절함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는 간절함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와 같은 깊은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아버지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순종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현실화시키는 결단을 가능케 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될 정도의 간절함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열매 맺게 되었다. 그리고 그 피의 대속을 통해 그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미련하다고, 약하다고 판단하고 무시할 수 있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과 지혜와 확신을 주신다. 그리고 이 땅에 가장 중요한 일들을 이루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서 그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방법이다.

기도를 멈추지 마라. 겟세마네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간절함으로 기도하자. 그것이 이 시대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요청임을 기억하자.

윤창재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