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세계 최초로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입원율, 사망률 등 코로나19 관련 지표가 크게 개선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확진자 규모가 큰 탓에 감염 확산 통제가 어려운 가을·겨울에 4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입원율 70%, 사망률 90% 줄었다
국민일보가 29일 영국 정부가 웹사이트에 공개한 통계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유행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1월과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지난 7월 19일 이후 한 달을 비교한 결과 입원율은 70% 가까이 줄었고 사망률은 9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보급이 코로나19 확진과 입원·사망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백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던 지난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확진자 수는 119만4119명, 입원환자 수는 11만3138명, 사망자 수는 3만3673명이었다. 1000명이 확진됐다면 그중 100명은 중증으로 입원했고 30명은 사망한 것이다.
인구 약 3분의 2(66.7%)가 접종을 완료한 지난 7월 19일 이후 한 달 동안 확진자 수는 90만488명으로 1월 재유행 당시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입원율과 사망률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비율로 보자면 1000명이 확진됐을 때 입원환자는 30명(2만5884명), 사망자는 3명(2566명) 수준이었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확진자 수치가 높다고 해서 과거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현재 영국 성인 인구의 94.2%는 감염 또는 백신접종으로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
노리치 의과대학의 감염병 전문가인 폴 헌터 교수는 “중화항체 수준과 감염 보호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며 “면역화가 감염 확산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중증 위험도를 줄이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잉글랜드 공중보건국(PHE)은 “예방접종 프로그램으로 8만2100명 이상의 입원을 막았고 9만52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90명대 비정상… 병원은 과부하”
전문가들은 매일 1200명대의 사망자가 나왔던 지난 1월보다는 개선됐지만 매일 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현 상황도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중증 치료를 위한 입원환자가 누적되면서 영국 의료체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배스대학의 수학생물학센터 소장인 킷 예이츠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영국에선 코로나19로 하루 90명대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며 “이번 재개 조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예이츠 교수는 “또한 여전히 하루 평균 800여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영국 공중보건시스템이 또다시 압박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해 필요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이어 “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일상적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 결과 사람들이 생명을 구하는 치료를 놓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치료를 위한 병상은 부족한데 환자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통계에 따르면 NHS 소속 병원(NHS Trust) 193곳 중 82곳은 지난 분기 대비 85% 이상의 병상을 가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곳은 95% 이상의 병상을 쓰고 있다고 보고했다. 더타임스는 “팬데믹 이전보다 여유 병상이 4500개 이상 줄어들었다”며 “의료 안전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거리두기, 모임인원 제한 등 각종 방역지침이 해제된 반면 사회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영국 병원은 코로나19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바이러스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NHS에 따르면 영국 내 정기적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들 수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2월 440만명에서 지난 7월 기준 550만명으로 증가했다.
“겨울 오면 4차 대유행, 방역조치 필요”
위드 코로나 선언 이후 확진 규모는 2만명대까지 줄어들었다가 다시 3만명대로 올라서며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개학하고 근로자들이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감염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릭대학의 감염병 학자인 로렌스 영 교수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날이 추워지는 가을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실내로 몰릴 것이고 백신으로 인한 면역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염병 전문가인 피터 잉글리시 박사는 “많은 의사들이 4차 대유행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며 “NHS의 대처 능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가벼운 독감이 유행해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이츠 교수는 “실내 및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과 환기를 의무화하고 검사·추적·격리 시스템과 결합한 격리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영국에 뒤이어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싱가포르는 이날 기준 백신접종 완료율 80%를 넘겼다. 옹 예 쿵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더욱 회복력 있는 국가로 우리 자신을 만드는 데 있어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구 570만명인 싱가포르의 접종 완료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정우진 임송수 기자 uzi@kmib.co.kr
['위드 코로나' 택한 나라들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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