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후폭풍이 거세다. 김현아 전 국회의원에 이어 김 본부장의 잇따른 낙마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부동산 정책 구상에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인사청문회와 SH임원추천위원회를 주도한 서울시의회와 서울시의 관계도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9일 SH와 서울시에 따르면 SH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최근 SH사장 후보로 한창섭 전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추진단장과 정유승 전 SH 도시재생본부장을 추천했다. 지원자 중 최종 후보 물망에 올랐던 김 본부장은 탈락했다. 인사청문회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서울시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결과다.
SH 임추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SH 임추위는 서울시의회 추천 3명, SH 추천 2명, 서울시 추천 2명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오 시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추천위원은 서울시와 SH 추천 위원 4명으로 파악된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은 소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김 본부장의 탈락에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면접에서 김 본부장에게 준 점수는 낙제점 수준인 40~50점대로 알려졌다. 시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김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거듭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내왔다. 반면 오 시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안한 분양원가 공개 등을 실행했다며 10여년간 칭찬해왔다. 또 지난달 야권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난 뒤 그가 부동산 부패 구조를 간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언행으로 볼때 여권 입장에서는 김 본부장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는 민주당 시의원들로서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중앙당에 충성도를 보이기 위해 김 본부장을 의도적으로 탈락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29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심사다. 김 본부장이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했다고 탈락시키면 오 시장은 현 정부와 다른 정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냐”며 “오 시장이 추천된 후보 2명을 모두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시의회는 오 시장과 김 본부장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오 시장이 코드에 맞는 인물을 SH사장에 앉히려고 무리수를 뒀고, 김 본부장은 면접에서 SH사장 적격자임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시의원은 “SH 관련 면접에 참여해봤지만 소수의 면접관이 특정인에게 낮은 점수를 줬다고 해도, 탈락했다는 것은 김 본부장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본부장 탈락에 대해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격노했다고 들었다”며 “이미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서울시가 사전작업을 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시의회 추천 위원이 특정 후보자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줘 탈락시킨 전례는 2012년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SH 사장 후보로 나섰던 최항도 전 서울시 기조실장이 당시 시의회 추천 위원 3명에게 20점·40점대 점수를 받아 낙마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