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하마터면 포기할 뻔했다

입력 2021-08-30 04:06

어느 때보다 공정이란 가치가 화두가 되고 있다. 그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중 몇 분이 자녀의 일에 본인의 지위와 인맥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했었다. 아빠들은 어떤지 가까이 보지 못해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과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자녀의 앞가림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엄마가 되면 저렇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최근 사건을 보며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에게 다시 한번 물었었다. 성공한 엄마가 자녀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칙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한 선배가 그럴듯한 해석을 하나 제시했다. 엄마가 사회에서 그 정도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얼마나 소홀했을지, 그래서 그간 쌓인 죄책감에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게 아니겠냐는 의견이었다. 아이가 크는 동안 다른 엄마처럼 살펴주지 못해 마음이 아리다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기쁘게 힘을 쓰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약간은 납득이 갔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꽤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고 전임교원이 되기를 희망하다가 서류전형 요건이 되는 연구 실적이 동료들보다 많이 뒤처져서 이쯤 되면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나는 1∼2년 애쓰고도 인정받는 논문 하나를 쓰기 어려운데 남들은 짧은 기간에 서너 개씩을 척척 만들어 내니 그렇게 좌절할 만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의 실적에 약간의 반칙이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정해야 한다. 혜택을 얻고 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충분한 노력을 쏟았을 것이고 모든 정황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행한 ‘공정하지 않음’이 누군가의 한 자리만 뺏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게임이 공정하다고 믿고 달리던 중에 자신의 실력이 남보다 한참 못 미친다고 잘못 알고 좌절하고 탈락하는 청춘의 눈물이 얼마만큼일지도 모두 헤아려야 한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