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비천한 주권자

입력 2021-08-30 03:05

오늘 본문은 세 단락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역사적 사실이 첫 번째 단락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주께서 유다를 바벨론에 넘기심 등에 대한 해석이 두 번째 단락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성전 그릇을 이방 신전에 가져다 두는 역사적 사실이 낳은 고통의 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매우 컸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엔 그들이 겪은 수많은 고통 중 성전 그릇이 옮겨진 사건이 기록됐을까요.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훼손된 사실만큼 큰 충격과 슬픔을 가져온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전 그릇이 옮겨진 사건을 기록해 놓은 이유는 슬픔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니엘 강해’의 저자인 데일 랄프 데이비스는 그 이유를 ‘비천한 주권자’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당시 신과 민족은 운명을 같이한다고 간주했습니다. 유다 왕의 항복과 성전 파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보호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유다 민족이 패배자면 여호와도 패배자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바벨론 사람들은 “여호와를 이긴 모든 복의 근원인 마르둑을 찬양하라”고 외쳤을지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백성을 깨우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수치를 당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보다 능력이 없어 패한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롭게 다듬기 위해 기꺼이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가 무지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였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자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파괴됐다는 사실은 조상 때부터 지켜온 신앙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결과 구약 신앙공동체는 어떻게 됐을까요. 성전 파괴와 함께 신앙공동체가 무너지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그들은 머나먼 타국 땅에서도 제사 시간에 맞춰 기도하고 말씀을 낭독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나아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전(예전) 중심의 종교에서 율법(말씀) 중심의 종교로 바뀌는 계기가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 중에 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예배에 대한 잘못된 말들로 상처가 더욱 깊어짐을 느낍니다. 그런데도 소망이 있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수치와 모멸, 조롱을 감수하시는 ‘비천한 주권자’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치욕을 당하셨지만 바벨론에서 참된 주권자가 누구인지 나타내셨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구약의 공동체를 새롭게 하셨듯이 이 땅의 교회를 더 아름답게 빚는 계기로 삼으실 것입니다.

개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좌절의 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우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 고통당하시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기도를 기쁨의 단으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하는 우리가 모두 되길 소망해 봅니다.

양승언 목사(다움교회)

◇양승언 목사는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사역하면서 제자훈련 목회와 훈련, 양육에 대한 이론들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다움교회를 개척해 현장 사역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영적 성장의 길’(디모데), ‘믿으라고 뭘’(넥서스Cross)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