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혈우병 환아들에게 투여하는 치료제의 급여 기준을 대폭 완화키로 결정했다. 쉽게 멍드는 혈우병 환아들은 그간 가슴에 바늘을 꽂아야 하는 정맥 주사를 맞아 왔으나 기준이 완화되면서 앞으로는 피하 주사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2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전날 만 1~12세 미만 혈우병 환자의 경우에도 ‘헴리브라’ 주사를 투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고시를 일부 개정해 행정 예고했다. 해당 고시는 27일까지 3일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헴리브라는 피하 주사 형태의 혈우병 치료제라 투약 과정에서 고통이 덜하고 약효 지속 시간도 기존 치료제에 비해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만 1~12세 미만 혈우병 아이들의 헴리브라 요양급여 인정과 함께 처방 조건이 ‘면역관용요법(ITI)에 실패한 경우’로 변경된 후 상황이 달라졌다. 환아들은 먼저 정맥관을 삽입한 뒤 매주 두세 번 가슴 부위 정맥에 치료제를 주사하는 ITI 치료를 받아야 했다. 환아들과 그 가족은 이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다(국민일보 5월 5일자 12면 참조).
개정 소식이 전해지자 혈우병 환아를 둔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혈액응고인자가 없거나 부족해 생기는 희귀질환인 혈우병 환아들은 장난감을 밟기만 해도 발바닥에 피멍이 든다. 혈우병을 앓는 영준(가명·2)이 어머니 이모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더 이상 아이 정맥을 찾지 못해 가슴팍에 주삿바늘을 여러 번 꽂아야 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며 흐느꼈다. 어린이집에도 다시 등원할 수 있게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헴리브라가 신약이라 새로운 연구와 검토 결과가 꾸준히 보고돼 왔다”면서 “헴리브라 기준을 완화해도 좋다는 전문가 집단과 학계의 의견을 종합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국민권익위원회는 “나이가 어리고 혈관이 약해 장기간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 헴리브라를 요양급여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급여기준을 재검토하라”는 의견을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달했었다.
개정 고시에 ‘최근 24주간 출혈 건수가 3회 이상’이라는 조건이 달렸으나 이는 사실상 모든 혈우병 환아에게 해당되는 증상이다. 혈우재단 등에 따르면 만 1~12세 미만의 혈우병 환아는 전국에 약 400명으로 추산된다. 배한애 한국혈우병환우회 대표는 “지난 7개월간 한숨도 제대로 잔 적이 없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기준이 바뀌게 되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ITI를 거치지 않아도 헴리브라를 투약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종합된 의견”이라며 “어린 혈우병 환자들이 덜 고통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기쁘다”고 말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