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뜨고 시가 흐르는 분청사기·백자 전시실

입력 2021-08-29 21:23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 전시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된 백자 달항아리 뒤로 산수화 영상이 펼쳐진다. 조선 말기 서화가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 등 전통 산수화에서 딴 이미지가 차례로 돌아가며 풍경을 변주한다. 그림은 모두 초옥 속의 누군가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어 추석을 앞두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건드린다.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이 스토리텔링을 입힌 전시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지난 2월 재단장한 분청사기·백자실의 전시는 유물만 박물관의 아우라를 입혀 보여주던 기존의 전시 문법을 벗어난다. 상설전시관 3층에 위치한 분청사기·백자실은 ‘분청사기 구름 용무늬 항아리’(국보 제259호)와 ‘백자 달항아리’(보물 제1437호) 등 국보 6점과 보물 5점 등 400여점을 전시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인 분청사기와 백자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대 순으로 유물을 배치해 그 변화상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전시는 시각을 넘어 청각을 자극하며 공명을 일으킨다. 도입부인 ‘장인의 공간’이 그런 예이다. 장인이 흙을 밟는 소리,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 등 갖가지 청각적 자극을 집어넣음으로써 도자기 자체만이 아니라 그 도자기를 탄생시킨 옛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일명 ‘달이 뜨는 방’도 콘셉트가 재미있다. 방에 들어서면 음악이 들리는데, 그 소리에 이끌려 사방을 둘러보다보면 한 벽면에 걸린 달이 눈에 들어온다. 달과 함께 화조화 산수화가 이어지는데, 모두 전시된 도자기의 무늬에서 땄다. 깨진 백자 조각에 숨어 있던 무늬도 있다. 그래서 꼼꼼히 전시를 보도록 유도하면서 덤으로 주는 선물처럼 진열장 구석 바닥에는 싯귀가 영상으로 투사돼 흐른다.

또 백자 색상의 다양함을 느끼도록 조성한 공간, 상감 인화 박지 등 분청사기의 다양한 제작 기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상 등 구석구석 친절함이 있다.

대표 유물인 달항아리뿐 아니라 여인의 화장기구, 타구(침 뱉는 그릇), 양념통 반찬통 같은 부엌 용기 등 우리가 잘 몰랐던 다양한 용도의 백자를 만날 수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