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아프간 난민 “바이든 정부, 구조기한 더 늘려야”

입력 2021-08-27 04:03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탈출을 막겠다고 해서 공포와 절망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31일까지 아프간을 모두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요.”

25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챈틀리 덜레스엑스포 센터에서 만난 샤짐(35)씨가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아프간 카불 공항을 탈출해 미국으로 온 형을 만나려고 엑스포 센터에 설치된 임시 난민 수용소를 찾았다.

아프간 난민을 태운 대형 버스 틈 사이에서 그는 간신히 형 얼굴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당국 직원에게 “옷가지를 건네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접촉이 금지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형제는 멀리서 서로 눈을 마주친 뒤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했다.

난민 수용소 주변은 검은 가림막이 쳐 있었다. 주변에는 카불을 탈출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짐을 싸 들고 온 아프간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샤짐씨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용소를 찾았다고 했다.

샤짐씨는 “탈레반이 미군 조력자를 찾아 집에서 끌어내고 총살하는 장면을 지인들이 목격했다”고 전했다. 최근 카불에서 탈레반 통제가 강화되면서 두려움이 극심하다고 한다. 샤짐씨는 “정당한 통행 서류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서구를 상징하는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채찍을 맞았고, 공항 이동을 거부당했다”며 “검문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오물로 가득한 공항 주변 하수도를 건너 공항 울타리로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샤짐씨는 “탈레반 지도부는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전사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고,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그들이 사람을 때리고 죽여도 탈레반 지도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탈레반 지도부가 정당한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 선전하는 유화정책이 현장에서는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친척을 만나기 위해 수용소로 왔다는 40대 여성은 “아프간 사람들은 모두 구출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지만, 현실은 절박하다. 구조 기한을 더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난민을 태운 새로운 전세버스가 막 수용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수용소로 들어가는 난민들은 상당수가 짐이 전혀 없었고, 일부는 배낭만 겨우 메고 왔다. 아이를 안은 한 남성은 직원을 향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센터 외부를 통제하는 직원은 “이들은 이곳에서 며칠 기다린 뒤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가거나 다른 수용소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