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 1급인 나은(가명·9)이가 코를 찡긋했다. 엄마 정영숙(49)씨는 그 조그만 움직임에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딸이기에 작은 것에 반응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했다. 변을 잘 보지 못하는 나은이가 방귀를 뀔 때면 온 가족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나은이는 3.25㎏으로 누구보다 건강하게 태어났다. 문제가 발생한 건 태어난 지 3개월쯤 됐을 때였다. 먹은 걸 자주 토했다. 동네 병원에선 단순 감기라고 했다. 정씨는 아기들이 100일 때쯤 흔히 겪는 가벼운 증상 중 하나인 줄 알았다. 나은이를 다른 병원에도 데려가 봤지만 거기서도 괜찮다는 말만 들었다.
그런데 처방해준 약을 먹고도 나은이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탈진이 되더니 호흡조차 불규칙해졌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급성 심근염 같다며 대학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정씨와 남편 박지훈(가명·50)씨는 눈앞이 깜깜했다. 부랴부랴 도착한 대학병원에선 왜 이제야 왔냐고 했다. 나은이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진단명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과 ‘심장근육병증’이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나은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수술 때 투여한 수면제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뇌 손상이 너무 많이 돼서 그런 거였다. 그렇게 나은이는 장애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당시는 남편 박씨가 목사 안수 받은 지 몇 개월 안 됐던 때였다. 정씨는 “하나님 뜻이 대체 뭘까. 왜 이런 일을 일어나게 했을까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뒤로 나은이 가족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정씨 부부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나은이 곁을 지켜야 했다. 직장생활을 했던 정씨는 육아휴직을 냈고, 박씨는 이듬해 사역을 그만두고 온전히 나은이만 돌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나은이는 두 번의 큰 수술을 했다. 목에 착용한 튜브가 주변 피부를 건드리면서 생긴 결절들이 나중에 혹처럼 커져 호흡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수술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패혈증이 와 중환자실로 옮겨지기도 했다. 담당 교수로부터 “이제 나은이를 보내줄 준비를 하자”는 말도 들었다. 다행히 나은이 상황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빠른 회복을 보이며 퇴원했고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정씨는 나은이와 9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평범한 일상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나은이 치료비에 생활비, 둘째 딸(14) 교육비 등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정씨 부부는 “오늘을 살게 하심에 감사해하며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람이 하나 있다면 나은이가 매 순간, 주께서 언젠가 데려가시는 그 순간에도 그저 평안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기적을 품은 아이들’ 성금 보내주신 분
(7월 29일~8월 24일/ 단위: 원)
△고명자 김전곤 김정순 김병윤(하람산업) 정선호·김정희 20만 △김형욱 유명화 이삼영 조동환 10만 △고넬료 김성수 연용제 이기혁 정연승 조현주 최초혜 한승우 5만 △김인수 임순자 박현수 정대희 3만 △김명래 김영자 김광미 장영선 2만 △김동호 김혜영 생명살리기 하나 한영희 1만
◇일시후원: KEB하나은행 303-890014-95604 (예금주:사회복지법인밀알복지재단)
◇후원문의: 1600-0966 밀알복지재단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