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391명을 데려오는 정부의 이송계획은 군사작전처럼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특히 수도 카불이 함락되면서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이 철수하는 등 현지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자 정부는 군까지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아프간 조력자들의 한국행 요청을 받은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8월 초부터 이송계획을 준비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공세는 예상보다 거셌고,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한 지난 15일 정부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아프간 민간공항이 폐쇄되면서 당초 정부가 구상했던 외국 민간 전세기 이용은 불가능해졌다. 유일한 방법이 군수송기였고, 국방부는 주한미군 등과 협력해 군수송기 투입을 급히 결정했다. 외교부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중간기착지로 사용하기 위해 파키스탄 정부와 협상에 들어갔다.
최대 난관은 카불 공항 밖에 있는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의 감시, 몰려든 인파를 뚫고 카불 공항에 입성하는 것이었다. 미국 등도 자국민과 협력자 이송에 어려움을 겪던 터였다. 독일은 최근 수천명을 이송할 항공기를 보냈지만 겨우 7명만 탑승했고, 벨기에는 군용기에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25일 “낙담을 넘어 황당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셔먼 부장관은 지난 22일 20개국 외교차관 회의에서 미국이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회사의 도움을 받는 모델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는 이곳에서 버스 6대를 확보해 아프간인들을 태운 뒤 탈레반 검문소를 통과하게 했다.
그 사이 국내에선 군 투입을 준비했다. 작전명은 ‘미라클(기적)’이었다. 국방부 당국자는 “아프간인들이 목숨을 담보하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데 희망을 주고, 우리로선 왕복 2만㎞에 달하는 적지에 들어가는 작전이 처음인 만큼 성공을 기원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공군 수송기 슈퍼 허큘리스(C-130J) 2대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1대 총 3대가 투입됐다. 수송기는 23일 새벽 1시(한국시간) 출발해 당일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의료진 등 군 인력 60~70명이 동원됐고, 5세 미만 영유아를 위한 분유와 젖병, 매트리스까지 준비했다.
정부는 24일 슈퍼 허큘리스 2대를 아프간에 진입시켜 아프간인들을 이슬라마바드로 수송했다. 슈퍼 허큘리스에는 탈레반이 발사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 회피장비를 탑재했다.
우선 카불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아프간인 26명을 1차로 옮긴 뒤 C-130J 2대가 번갈아 카불과 이슬라마바드를 왕복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아프간 조력자 391명은 수송기 3대에 나눠 타 26일 오전부터 국내에 입국한다.
이들 대부분 여권이 없어 정부가 사전에 한국 여권을 발급하려 했지만, 아프간 정부는 허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단 이들에게 90일 체류가 가능한 단기비자(C3)를 발급했다.
현지인 동료를 두고 철수했던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현지 대사관 직원에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외교부가 공개한 카불 공항 현장사진에는 인근 국가로 철수했던 김 참사관이 카불 공항으로 돌아온 뒤 그곳에서 재회한 현지 직원과 포옹하는 모습도 담겼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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