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만의 큰비에도 무사… 비결은 댐·하천 스마트 통합관리

입력 2021-08-26 04:02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코르델 지방 인근의 역에 정차한 열차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각) 내린 폭우로 강이 범람하자 물에 잠겨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올여름 독일에서는 홍수피해로 19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세계 각국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막대한 인명·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흔적은 처참하다. 올여름 독일·벨기에 등 서유럽에선 홍수피해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런 대규모 수해 발생 가능성이 9배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지속가능한 기후위기 대응력을 갖추려면 ‘댐·하천 스마트 통합관리 체계’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는 홍수피해로 전전긍긍

25일 환경부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서유럽에 내린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에서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일 아어강·에르프트강 지역은 하루 최대 강우량이 93㎜, 벨기에 뫼즈강 주변 지역은 이틀에 걸쳐 106㎜에 달했다. 독일의 재난대응체계는 홍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기상 당국은 집중호우 때 돌발홍수 최고 경보를 발령했지만 재난경보전달체계의 단절·고장으로 국민이 피해를 봤다. 기상예측 불확실성과 홍수 대비 실시간 감시·경보체계가 제구실을 못한 것이다.

이후 독일 정부는 홍수 피해지역 재건에 300억 유로(약 40조5000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독일 환경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했다. 그들은 “정부가 라인강변 일대에 1970년대부터 추진해온 잦은 직강공사와 늪지대 매립·개발로 강이 빠르게 범람했고 이는 대규모 홍수피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는 “홍수피해 지역에선 매일 수천t 규모의 잔해물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역시 주민들이 겪는 재앙”이라고 했다. 터키 북부 지역에선 지난 11일 발생한 홍수로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상기후의 위력을 실감할 홍수피해는 서유럽 밖에서도 빈번하다. 중국 허난성에서는 지난달 내린 기록적 폭우로 300여명이 숨지고 50명이 실종됐다. 홍수에 무너진 가옥은 3만여채, 피해 농경지 면적은 1만904㎢에 이른다. 중국 당국이 추산한 직접 재산 피해 규모만 20조원을 넘는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1일 하루 432㎜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미 테네시주 중부 지역에서는 홍수 피해로 20여명이 사망했다. 이번에 내린 비의 양은 1982년 테네시주에 내린 기록(345㎜)을 크게 웃돈 것이다.

대규모 홍수피해 발생 가능성 9배 ↑

연구단체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여러 위험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다국적 기후변화 연구 단체인 세계기상귀인(WWA)은 지난 23일 올해 서유럽 대홍수와 같은 수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최대 9배까지 늘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발표한 보고에서는 “온난화로 치명적인 폭염과 극심한 가뭄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겼다.

지난 20년간 홍수피해에 노출된 세계 인구가 25%가량 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컬럼비아 대학 지구연구소 연구원 베스텔만 등 과학자들이 과학저널 네이처 최신호에 실은 내용이다. 위성 자료로 홍수 취약 지역에 사는 사람이 8600만명에 이른다는 결론을 도출한 건데 이는 2000년에 비해 25% 증가한 수치다. 2000년부터 2018년 사이 홍수 피해를 본 사람이 최대 2억9000만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포함됐다. 연구진은 “댐 붕괴로 인한 홍수피해는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117% 늘었다”며 “댐·하천 제방 같은 기반 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수해 사망자 0명’의 교훈

서유럽에 400년에 한 번 내릴 만한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독일과 벨기에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댄 네덜란드는 사망자가 없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델타 프로그램’이라는 통합적 홍수 예방사업에 주목했다. 네덜란드 국토의 약 25%는 해수면보다 낮고 인구의 60%는 홍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암스테르담·로테르담 지역명의 ‘담’이 댐을 의미할 만큼 물과 연관이 깊다.

1953년에는 대홍수로 1835명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 이후 네덜란드 정부는 1958년부터 1997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델타 프로그램’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다. 도로수자원공사(RWS) 주도로 하천 제방과 댐을 새로 건설했고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지점에는 수문을 설치해 범람을 예방했다. 빗물이 넘칠 때를 대비해 수로(水路) 역할을 하는 펌프 시설도 여럿 구축했다. 총 예산만 17조8000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네덜란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2100년까지의 홍수 상황을 예측·분석해 시설 보강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도 지난해 대규모 홍수 피해를 겪으면서 ‘댐·하천 통합관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물 관리 통합 정책도 시행될 예정이다. 댐 직하류는 댐 방류량이 하천 계획홍수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방류 도달 시간이 짧아 댐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결국 댐과 하천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댐 방류 영향(수량·수질) 등 실시간 감지와 신속 대응,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분절된 직하류하천을 ‘댐·하천 스마트 통합관리’ 체계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수자원 전문가는 “네덜란드는 댐·하천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대표 국가”라며 “중앙정부가 하천·댐·제방 등에 대한 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공기업인 도로수자원공사가 통합관리를 직접 수행하는 역할로 구분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하천 위주의 치수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네덜란드처럼 공기업 등 전문기관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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