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쪽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 그리스도인의 본질 깨닫게 해

입력 2021-08-27 03:04

성경 다음으로 ‘내 인생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국민일보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손에 성경을, 다른 손에 단 한 권의 책을 간직하라면 단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81)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1700쪽 장대한 분량으로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 책을 청소년 시절, 장로회신학대를 다니던 신학생 시절, 빈민선교 현장에 처음 뛰어들었던 전도사 시절,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그리고 다일공동체의 기틀이 다져진 이후 등 다섯 번 완독했습니다.

세 번째부터는 ‘책이 나를 읽어주고 있구나’라고 깨닫습니다. 누구나 여러 번 읽으면 질문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나는 누구입니까.’

책에는 아버지 표도르와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및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등장합니다. 돈·술·여자에 빠져 지내는 표도르, 퇴역 장교로 충동적 성격인 드미트리, 냉정한 무신론자인 이반, 청빈과 고독을 사랑하는 수도사 알료샤, 비열하고 오만해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나오는 스메르자코프 등이 인간 심리 깊은 곳의 악한 본성과 고뇌와 갈등을 실감 나면서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백미는 수도자 알료샤와 대좌한 무신론자 이반이 낭독하는 극시, 그리스도를 다그치는 대심문관의 장면입니다.

저는 목회자와 신학생이라면 반드시 이를 읽고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의지, 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파헤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급진적 사상범으로 체포돼 사형집행 현장에서 구사일생 살아납니다. 10년간 이어진 유배와 강제노동 속에 그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오직 한 권, 성경입니다. 그리하여 도스토옙스키는 성경에서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뜨겁게 그리고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처절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 그 모든 체험을 녹여낸 그의 마지막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류를 구원한다는 큰 목소리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지금도 속삭입니다.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 이후 천년전 수도자 성 프란치스코와 오백년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그리고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까지 공통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육신의 영성으로 비본질을 과감히 버리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라,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에 오신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최일도 목사 (다일공동체 대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