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에 다니는 50대 직장인 A씨는 조기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심각해진 구직난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건설 기술자로 일해온 터라 재취업 가능 분야도 제한적이다. A씨는 “수익이 줄더라도 일을 더 하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부터 1000인 이상 대기업의 50세 이상 비자발적 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재취업지원서비스 제공 의무화’ 제도를 시행 중이다. 노동자가 정년·희망퇴직 등 비자발적인 사유로 이직할 경우 사업주가 이직일 직전 3년 이내에 진로상담·설계,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 재취업지원서비스를 의무 이행토록 한 것이다.
전직·재취업지원서비스 개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산업 구조조정으로 대량해고가 발생한 이후 기업이 해고 노동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유럽과 일본에는 각각 1980년대, 1990년대에 관련 제도가 퍼졌다. 국내에는 1997년 외환위기가 도화선이 됐다. 2001년 7월 비자발적 이직 노동자에게 기업이 전직 서비스를 제공하면 정부가 비용을 보전해주는 ‘전직지원장려금’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기업 활용도가 낮아 10년 만에 폐지됐다.
재취업지원은 의무? 가욋일?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가속하면서 ‘계속 고용’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구인·구직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3249명을 대상으로 ‘정년(만 60세) 이후 근로 의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2%가 정년 이후에도 일하기를 희망했다. 50대 이상(94.8%) 40대(89.4%) 30대(85.5%) 20대(77.6%) 순으로 정년 이후 고용에 대한 열망이 컸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가족 부담을 덜기 위해 계속 일을 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문제는 재취업지원서비스 의무화가 1000인 이상 대기업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A씨처럼 중소·중견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 실제로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이 재취업지원서비스를 가욋일이라고 인식하는 사례가 많다.
2018년 12월 기준 전국 1000인 이상 사업장 중 재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한 비율은 19.5%였지만 100인 미만과 300인 미만 기업은 각각 1.0%, 1.1%에 불과했다. 지난 6월 노사발전재단이 발표한 재취업지원서비스 지원 대상 역시 1000인 이상 대기업 400곳, 900~999인 기업 50곳으로 한정됐다. 재취업지원서비스 제도가 ‘그들(대기업)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지원서비스 업체 인지어스의 한재용 대표는 “재취업지원서비스는 정부와 기업, 노조 모두가 관심을 두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며 “500~1000인 기업을 의무화 대상으로 포함하고 1000인 이상 기업은 근로감독관이 서비스 이행 실적 등을 평가해 피드백을 주는 방식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취업지원서비스를 몇 건의 상담으로 대충 때우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직이나 재취업 목적이 아닌 정부 관리·감독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최저 서비스’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취업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취업이 될 때까지 지원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는데 현재는 최소한의 상담 서비스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며 “의무화 충족을 위한 재취업 최저 서비스 내용이 시행령에서 빠져야 서비스 품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정년퇴직자도?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5~79세에서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연령은 평균 72.7세로 조사됐다. 하지만 55~64세 중고령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두는 평균 연령은 49.4세로 50세도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기업의 정년퇴직자 재고용 사례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기준 정년제를 도입한 35만4000개 사업체에서 ‘정년퇴직자 재고용’ 제도를 시행한 비율은 28.9%로 2013년(25.7%)보다 소폭 늘었다. 100~299인 사업체의 재고용제도 활용 비중이 50.1%로 가장 높았고 1000인 이상 대기업의 재고용제도 시행 비율은 41.0%였다.
청년·중년층도 재취업지원 절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위기는 연령대와 상관없이 찾아오면서 청년·중년층의 재취업지원서비스도 고용대책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40대의 경우 퇴직예정자나 구직자에게 생애경력설계·재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사업이 가동 중이다. 지원자는 전국 31개 희망센터에서 전직·재취업 교육, 취업·창업 정보 등을 받는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8만8000명이 지원받았다. 청년층은 올해부터 최대 30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제공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8일 기준 39만명이 지원을 신청했고 31만명이 수급자격을 인정받았다. 지난 26일에는 미래유망기업이 만 15~34세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6개월간 최대 114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됐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