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사는 이모씨는 어머니가 심장질환을 앓으면서 건강보험의 덕을 크게 봤다. 이씨 어머니는 어느 날 밤 가슴이 답답해 수술실에 입원했고, 심장혈관이 막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부전과 신부전이 함께 찾아오면서 환자는 물론 가족 모두 마음이 타들어갔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상태가 나아지기 어렵다고 했다. 최후의 방법은 인공심장 수술이었다.
수술 자체도 위험했지만 수술과 기계 값이 2억원에 달했다. 이씨는 병원과 상담 과정에서 ‘본인부담 상한제’ 덕분에 환자부담금이 2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0만원도 재난적 의료비를 통해서 일부 경감 받았다. 이씨는 “어렵게 가야 하는 깜깜한 길에 환한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며 “건강문제로 연이어 큰 아픔을 겪어보니 건강보험의 혜택과 든든함을 알겠다”고 했다.
정부는 중증질환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일명 ‘문재인케어(문케어)’를 지난 4년간 순차적으로 시행해왔다. 건강보험 혜택은 환자 부담이 컸던 초음파, CT, MRI 등까지 확대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받았더라도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환자는 비급여 의료비의 5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중증질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본인부담 상한제의 혜택도 강화됐다. 일정액이 넘는 병원비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거나 환자의 소득에 따라 상한액을 넘어서는 금액을 공단이 환자에게 지급한다.
부산에 사는 곽모씨는 갑자기 찾아온 혈액암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했다. 2012년에 한 차례 암 치료를 받았는데 2020년 악성 종양이 생겼다. 피검사와 MRI 등 각종 검사와 수술비, 입원비 등 600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청구됐다. 곽씨의 부담금은 청구 금액의 절반을 밑돌았지만 이마저도 곽씨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때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을 알게 된 그는 일부 병원비를 돌려받았다. 곽씨는 “만약 건강보험 제도가 없었다면, 병원비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더욱 힘들어 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20대 초반부터 15년 넘게 중증 아토피에 시달려온 신모씨는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미칠 듯이 가려운 피부로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고통을 참기 위해 썼던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으로 돌아왔다. 가장 힘든 건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 2019년 중증 아토피를 치료하는 신약이 출시됐다.
신약 투여만이 그에겐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1회 접종 시 100만원, 1년간 맞을 경우 2400만원을 감당해야 했다. 아토피로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었던 신씨에겐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다행히 지난해 4월 해당 신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이 10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줄었다. 1년에 960만원의 약값이 들었지만 본인부담 상한제를 적용했더니 신씨 소득으로는 860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었다.
구순구개열 치아교정은 2019년 3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조모씨는 둘째 아이가 치조열 때문에 치아교정을 받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경험했다. 치조열은 잇몸이 갈라져 잇몸 사이에 뼈가 없는 증상이다. 잇몸 뼈가 없기에 뼈 이식 수술을 하고, 수술 후에는 교정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3500만원 정도로 부담이 컸다. 조씨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CT,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20만~30만원씩 지출됐는데 이제는 치과 직원이 ‘그냥 가셔도 된다’고 한다”며 “평소에는 다양한 세금을 내면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갈 때만큼은 건강보험료가 아깝지 않다”고 했다.
중증심혈관질환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돌봐온 김모씨는 “어머니가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비가 걱정이 됐다”고 했다. 김씨 어머니의 진료비 총액은 4300만원이었다. 이중 MRI, CT 등은 최근 보장성 강화로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급여항목을 제하고 나니 본인부담률은 5%(610만원)까지 줄었다. 김씨는 “정말 말 그대로 ‘살았다’ 그랬다”며 “요새 ‘사보험 없이도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이 정말 와닿는다”고 했다.
건강보험을 통해 병원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와 의료 체계 개선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간호사에게 전문적인 간호를 받을 수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보호자가 없으면 간병인이 환자를 돌봤지만, 간호·간병통합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간호인력이 환자를 직접 돌보게 돼 환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증외상센터의 여건도 개선됐다. 외상환자를 이송하는 소방대원이 병원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다 지쳐 아무 병원이나 밀고 들어가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상환자 치료 여건은 좋지 못한 것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가의료에 대한 공공적 책임이 강화됐고, 외상센터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 정부는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는 척추 MRI, 심장 초음파 등도 급여를 적용할 예정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