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안경만 쓰면 잠이 와요

입력 2021-08-25 04:05

한동안 내가 불면증에 걸린 줄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불면증은 아니었다. 의사에게 진단받지 않고도 스스로 불면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데는 나의 뿔테안경이 있었다. 밤이면 영감을 떠올리고 새벽에는 시를 쓰느라 밤낮이 바뀐 생활을 오래 해 왔다. 햇빛을 받지 못하니 갈수록 심해지는 건 무기력과 우울감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밤낮을 되돌리려는 여러 노력과 시도 끝에 안경이라는 쉬운 도구를 찾아냈다.

난 안경만 쓰면 원하는 시간에 잠든다. 15분 이내로 말이다. 안경을 쓴 채로 잠드는 건 위험하지만 잘 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편이기에 이 방법을 애용한다. 안경에 마취총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잠드는 걸까.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펼치면 하품이 쏟아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까. 안경의 적당한 무게감이 눈을 지압해주기 때문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안경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안락함 때문인 걸까. 실제로 나처럼 자신만의 수면법을 찾아낸 사람들이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을 시작하면서 불면증이 사라진 사람이 있고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불면증이 사라진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음식과 예술적 취향이 다르듯이 수면 방법도 각자 다른 게 분명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소음 때문에 잠드는 사람이 있고 빗소리를 들어야 잠드는 사람도 있다. 애완동물을 품에 안아야 잠드는 사람이 있고 라디오 소리를 들어야 잠드는 사람도 있다.

달콤하게 잠드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다. 이불만 덮는 걸로 잠들지 못한다면 분명 자신만의 수면법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보통 책을 펼치면 잠이 쏟아진다고 말하는데 글을 쓰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오히려 책을 펼치면 생각이 많아져 잠을 못 잔다. 오늘 밤을 위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안경을 써야 비로소 잠드는 나처럼 희한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매일 달콤한 잠에 빠진다면야 복권 2등 정도에 당첨된 행복일 테니까.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