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베이비붐? 불확실성에 되레 더 줄었다

입력 2021-08-28 04:05

코로나19가 1년 넘게 전 세계인을 집에 가두다시피 했지만 ‘팬데믹 베이비붐’은 없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부터 인구 대국 중국까지 대부분 나라에서 출산율은 늘긴커녕 급감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이 고립돼 부대끼는 시간이 늘어나 아기가 많이 태어나리라는 통념. 이제는 이 ‘뇌피셜’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양육 부담, 정부 지원 부족,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만족 등으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느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같은 재난은 인구문제에 호재가 아니라 악재에 가깝다.

48년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6월 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361만명으로 1년 전 375만명보다 4% 줄었다. 1973년 이후 최대 감소, 1979년 이후 최저 출생이다. 연초에 태어난 아이들이 워낙 줄어서 연간 통계를 확 깎아 먹은 건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전년 동기 대비 출생아 수는 지난해 상반기에 2%(3만명) 줄었는데 하반기엔 6%(11만명) 감소했다. 2019년은 상반기 -2%였던 감소율이 하반기에 1%로 줄었다.

월별로 쪼개서 보면 더 할 말이 없다. 코로나19가 확산한 게 지난해 3월이니까 이후 생명을 얻은 아기는 일러야 11월이나 12월에 나왔을 것이다. 넉넉잡아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12월 말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 수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6% 적었다.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크게 감소한 기간이다. 2019년 11월, 12월 감소폭은 각각 3%, -1%였다.

CDC 국립보건통계센터는 “출생은 이전부터 이미 연간 약 2%씩 감소했지만 2020년에는 더 큰 감소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2019년은 2018년(약 379만명)보다 1% 감소하는 데 그쳤다. 1년 전보다 줄어든 출생아 수는 지난해가 14만명으로 2019년(4만명)의 3배가 넘는다.

산모와 유아 건강 개선을 위한 비영리 단체 ‘마치오브다임’의 의료·보건 책임자 라훌 굽타는 CNN 인터뷰에서 “팬데믹은 지속적인 출생 감소 추세와 함께 출생아 수를 급감시킨 ‘완벽한 폭풍’이었다”고 말했다.

허리케인·정전에도 베이비붐?

팬데믹 초기였던 지난해 봄만 해도 ‘갈 곳도 없이 실내에 갇힌 커플들이 연말에 베이비붐을 일으키지 않겠느냐’고 추측하는 이들이 있었다. 재난 때마다 나오는 얘기인데 부분적이나마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2013년 7월 뉴저지주 해변도시 롱브랜치의 일부 병원에서 출산이 급증했는데 그때가 마침 허리케인 ‘샌디’가 미 동부 해안을 휩쓸고 간 지 9개월 뒤였다.

당시 지역 일간 ‘애즈베리파크프레스’는 몬머스의료센터에서 35%, 다른 두 병원에서는 20% 출산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산부인과 진료실을 운영하던 로버트 루비노 박사는 CNN에 “실습을 위해 새로운 산부인과 환자를 찾는 걸 그만둬야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반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구통계학자 칼 하우브는 샌디발 ‘재난둥이’ 증가 가능성에 대해 “수십년간 출생률을 조사해 왔지만 재난 발생 9개월 뒤 해당 지역에 베이비붐이 일어났다는 명확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전 베이비붐’ 해프닝도 있었다. 뉴욕 대정전 9개월 뒤인 1966년 8월 뉴욕타임스는 여러 병원에서 예년보다 출산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정전 사태가 출생 증가로 이어졌다는 취지였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스놉스닷컴은 “미리 정한 결론에 데이터를 끼워넣은 기사였다”며 “출생률은 과거 5년간의 출생률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끝나면 다시 늘어날까

처음부터 전문가들은 팬데믹 베이비붐에 회의적이었다. 인구통계학자 케네스 존슨 뉴햄프셔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4월 CNN 인터뷰에서 “출생이 증가할 리 없다”며 “이것(팬데믹)은 ‘이제 아이를 낳자’고 말하게 하는 종류의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반대로 출산율 감소를 예상했다. 전염병 유행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 출산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존슨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를 예로 들어 “당시 출산율은 크게 떨어졌다”며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6월 보고서에서 2021년 출생이 2019년보다 최대 50만명 정도 더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대비 10% 줄어들 거라는 얘기다. 구트마허연구소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영향을 우려해 임신을 미루거나 자녀를 덜 낳기로 한 여성이 34%였다.

한 번 낮아진 출산율은 다시 회복되지 않고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멜리사 키니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필립 레빈 웰슬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연구 결과 올해는 팬데믹이 없다고 가정한 경우보다 약 8%인 30만명이 덜 태어날 것으로 예상됐다”고 했다. 최근 잠정 출생 통계를 발표한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는 올해 1월 출생이 전년보다 각각 7.2%, 10.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