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권민석(30)씨는 ‘9시 마감’이 적용된 23일 오후 9시 허탈한 표정으로 가게를 정리했다. 홀과 주방을 오가던 그는 때때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날 매출은 13만원. 오후 10시까지 영업했던 지난주 월요일 매출(36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매출 평균이 100만원을 웃돌았고, 코로나 이후에도 약 40~50만원 정도였는데 4단계 적용 이후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권씨는 “생각보다 매출이 더 떨어졌다. 오늘 너무 심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부는 이날부터 거리두기 4단계 지역에서의 식당과 카페 매장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1시간 단축했다. 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백신 접종 완료자를 포함할 경우 최대 4명까지 모임이 가능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하지만 권씨는 이 같은 지침에 대해 “백신 접종 완료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애초에 우리 가게를 찾는 젊은 손님들은 인센티브 대상이 아니다”며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방역 조치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낮에는 잠잠하던 코로나가 9시가 넘으면 갑자기 창궐하고, 백화점 대신 자영업자 가게에만 창궐하는 것이냐”며 “자영업자들만 희생을 강요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관악구에서 6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찬기(62)씨도 백신 인센티브가 포함된 영업시간 단축 조치에 대해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모임을 4명으로 늘려준다 해도 원래 오지 않던 50대 이상 접종자들이 올 리가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4단계 적용 후 김씨 가게 매출도 반토막 났다.
마포구에서 피자와 맥주를 함께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김석영(32)씨도 “주류와 식사를 같이 파는 매장은 오후 8시부터가 피크타임”이라면서 “9시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면 애초에 손님이 매장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2주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계속 바뀌는 영업 제한 조치로 인해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너무 힘들어서 자살예방센터에 전화해 상담을 받았다”는 후기까지 올라왔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지난 21일 국회 앞에서 소위 ‘걷기 시위’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이 시위는 지난 3월 서울에서 한식집을 개업한 정훈(33)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정씨는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가게를 폐업하고 그동안 일용직으로 모은 돈으로 다시 가게를 열었는데 4개월 만에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됐다”며 “이제는 정말 가정이 파탄 날 것 같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첫 아이가 곧 태어나는 정씨는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두렵다”고 했다.
SNS를 통해 정씨의 제안을 접한 자영업자들은 정부 방역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함께 걸었다. 정씨는 “1인 시위 외에는 우리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 때까지 걷기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간담회를 열고 “정부는 치명률 중심의 새로운 방역 체계를 마련해 ‘위드 코로나’로 방역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판 신용일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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