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 등에 관한 처벌법(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시민단체 모두 반발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경영계에선 산재기준이 포괄적이고 모호해 경영책임자의 과잉 처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한편, 시민단체들은 질병 목록이 과도하게 축소돼 오히려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36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회는 23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관계부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은 경영책임자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의무주체인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고,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우려가 있다”면서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 취지를 달성하면서, 선량한 관리자로서 사업장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한 경영책임자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행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6개월 이상 치료’ 등 직업성 질병자 기준 마련, 주유소·충전소의 사업특성을 고려한 공중이용시설 적용기준 재설정,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내용 구체화 등을 건의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직업성 질병 기준이 과도하게 축소되는 등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통해서는 여전히 경영책임자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반올림은 “정부의 시행령안으로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이 발병해도 ‘죽지만 않으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근로기준법, 산재보상보험법에 명시된 직업성 질병 목록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날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민주노총·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직업성 질병 범위의 과도한 축소, 안전보건 관리의 외주화, 중대시민재해 적용대상인 ‘화학물질·공중 이용시설 범위’의 협소한 규정 등 내용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를 후퇴시킨다”며 정부에 시행령 개선을 요구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