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공항은 지옥”… 두 살배기도 밟혀 숨졌다

입력 2021-08-23 04:08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임산부가 21일(현지시간)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착륙한 미국 공군 수송기에서 들것에 실려 내려오고 있다. 이 임산부는 착륙 직후 수송기 화물칸에서 여아를 출산했다. 수송기 조종사는 비행 도중 진통이 시작된 임산부를 위해 고도를 낮춰 운항했다. AF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현지 주민의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 공항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든 상태다. 특히 두 살배기 아기가 압사 당하는 등 인명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는 이날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외곽에서 최소 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스카이뉴스가 보도한 영상에는 현지에 파견된 군인들이 흰색 천으로 시신 세 구를 덮는 모습이 담겼다. 매체는 수만명의 군중이 공항으로 몰리면서 압사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날 카불의 미국 회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한 여성은 카불 공항에서 수많은 인파에 두 살짜리 딸을 잃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카불을 재장악한 이후 카불 공항으로 가는 경로를 모두 막고 시민들을 검문하고 있다.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수만명이 카불 공항 내 미·영군이 통제하는 기지 앞 바리케이드로 몰리면서 현장은 혼돈에 빠진 상태다. 현재 카불 공항 인근에선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 속에 탈수와 탈진의 공포도 겪고 있다.

나흘째 공항 입구에서 대기 중인 한 여성은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눈앞에서 사람들이 탈레반 대원들에게 구타당하거나 총격을 받는 모습을 봤다”며 “지옥에 갇혔다”고 말했다. 가족 5명과 함께 미국 비자를 발급 받고 미군기지로 가라는 미 영사관의 안내를 받았다는 이 여성은 “닫힌 공항 외곽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사람들 상당수가 미국 비자뿐 아니라 여권, 영주권 소지자”라고 설명했다. 아프간 톨로뉴스는 공항 내 탈레반 지도자를 인용해 공항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압사한 사람이 최소 40명이라고 전했다.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당국의 개별 지침을 받은 게 아니라면 공항과 공항 출입로의 이동을 피할 것을 미국 시민들에게 권고한다”며 “보안 상황 변화가 있으면 연락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위협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았다. AP통신은 미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아프간 내 미국인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카불 공항의 비극’이 이어지는 와중에 미 군용기로 탈출하던 임산부가 착륙 직후 무사히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CNN은 이날 미 공군 수송기 C-17에 탑승한 한 여성이 전날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 기지에 착륙하자마자 수송기 화물칸에서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임산부가 군용기 내에서 진통을 겪던 중 한때 비행 고도가 8534m에 이르면서 위급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 공군은 트위터로 출산 소식을 전하면서 “기내 기압을 높이기 위해 긴급히 비행 고도를 낮췄고 그 덕분에 임신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산모와 아기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