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현지 주민의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 공항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든 상태다. 특히 두 살배기 아기가 압사 당하는 등 인명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는 이날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외곽에서 최소 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스카이뉴스가 보도한 영상에는 현지에 파견된 군인들이 흰색 천으로 시신 세 구를 덮는 모습이 담겼다. 매체는 수만명의 군중이 공항으로 몰리면서 압사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날 카불의 미국 회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한 여성은 카불 공항에서 수많은 인파에 두 살짜리 딸을 잃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카불을 재장악한 이후 카불 공항으로 가는 경로를 모두 막고 시민들을 검문하고 있다.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수만명이 카불 공항 내 미·영군이 통제하는 기지 앞 바리케이드로 몰리면서 현장은 혼돈에 빠진 상태다. 현재 카불 공항 인근에선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 속에 탈수와 탈진의 공포도 겪고 있다.
나흘째 공항 입구에서 대기 중인 한 여성은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눈앞에서 사람들이 탈레반 대원들에게 구타당하거나 총격을 받는 모습을 봤다”며 “지옥에 갇혔다”고 말했다. 가족 5명과 함께 미국 비자를 발급 받고 미군기지로 가라는 미 영사관의 안내를 받았다는 이 여성은 “닫힌 공항 외곽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사람들 상당수가 미국 비자뿐 아니라 여권, 영주권 소지자”라고 설명했다. 아프간 톨로뉴스는 공항 내 탈레반 지도자를 인용해 공항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압사한 사람이 최소 40명이라고 전했다.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당국의 개별 지침을 받은 게 아니라면 공항과 공항 출입로의 이동을 피할 것을 미국 시민들에게 권고한다”며 “보안 상황 변화가 있으면 연락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위협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았다. AP통신은 미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아프간 내 미국인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카불 공항의 비극’이 이어지는 와중에 미 군용기로 탈출하던 임산부가 착륙 직후 무사히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CNN은 이날 미 공군 수송기 C-17에 탑승한 한 여성이 전날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 기지에 착륙하자마자 수송기 화물칸에서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임산부가 군용기 내에서 진통을 겪던 중 한때 비행 고도가 8534m에 이르면서 위급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 공군은 트위터로 출산 소식을 전하면서 “기내 기압을 높이기 위해 긴급히 비행 고도를 낮췄고 그 덕분에 임신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산모와 아기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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